[기자수첩] ‘유희왕’(遊戲王) 노조

신유림 기자 승인 2020.09.14 16:27 의견 0

[토요경제=신유림 기자] ‘모든 노동은 신성하다.’

중세의 ‘직업소명설’이나 ‘피지배층에 대한 지배권 강화 수단’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첨단시대를 맞아 번뜩이는 두뇌로 일확천금을 버는 현실을 애써 모른 척하더라도 모든 노동이 신성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자신의 노동이 다가오는 카드결제일이나 대출상환금 때문일지라도, 혹은 자본가의 노예 시스템에 속박된 결과라 할지라도 인간의 ‘노동’은 적어도 신의 저주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노동의 대가는 충분히 보상받아야 한다. 특히 현대 민주사회에서 노동권은 더욱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는 친 자본주의와 자본가 우대 정책으로 노동자를 탄압했고 노동권은 짓밟았다. 또 강압과 독재로 수많은, 때로는 정의로운 노동자들을 한껏 쓰러뜨렸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후진적 사고는 변하지 않았다. 

파업은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파업 단체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유일한 국가이며 노조에 수백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는 말도 안 되는 나라다. 

엄연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에는 “사용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해외 선진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기업이 법을 과연 몰라서 그런 폭력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걸까.

이는 한국언론을 장악한 보수언론들이 파업의 이유보다는 그에 대한 피해만 보도하는 이른바 ‘밑밥’을 깔고 판사들이 ‘불법 파업’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업계에서 벌어지는 잇단 파업시도는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한국지엠 노조는 썩은 동아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사측에 “1조원을 풀지 않으면 파업에 돌입하겠다”며 압박을 하고 있다.

특히 최근 나름 실용주의 노선을 걷는다고 평가받던 현대자동차 노조는 우리에게 황당함마저 안겨줬다.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 17년 전 법적으로 사라졌던 ‘월차’ 제도를 아직도 시행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월차를 기본급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법적으로 연차는 연 25일이 상한이지만 현대차 노조는 월차까지 더해 40일을 쉬었던 것으로 이번에 드러났다. 당연히 여름휴가 5일은 별도다. 

대한민국 법보다 사규가 우위에 있는 것이다. 불리하면 법이요 유리하면 사규인 셈이다.

거기에 더해 기본급 인상, 전년도 당기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5개월 전만 해도 기본급을 동결하자던 그들이 아닌가.

또 있다. 

회사가 코로나19 사태로 하계휴양소와 체육대회 운영을 취소했으니 그 경비를 환산해 상품권으로 지급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복리후생 차원에서 여름휴가 기간 휴양지에 숙소를 임대해 제공해온 회사를 상대로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참으로 신묘(?)하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11% 정도로 독일과 일본(17%), 스페인(14%)보다는 떨어지지만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은 12%에 불과해 독일의 56%, 프랑스의 98%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이는 단체협약의 효력확장률이 약하다는 뜻이다. 즉 같은 산업에 종사하더라도 노조에 가입한 정규직 직원들은 그나마 혜택을 받지만, 그 밖의 근로자들은 ‘열외’라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강성노조들은 언제나 제 밥그릇만 챙겼다.

특히나 현대차 노조는 파업 이후엔 항상 ‘단체교섭 타결축하금’, 파업 기간의 조업손실을 메꾸기 위한 ‘추가근무수당’과 ‘특근수당’까지 받아왔다. 

이 같은 한국의 열악한 노동권에도 불구하고 이런 몰상식과 철저한 이기심 때문에 최근엔 젊은 층도 노조에 등을 돌렸다. 오늘도 하청기업, 또 그 하청의 하청기업들은 실적 악화로 지옥 속에 산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자기들만의 세상에 가뒀는지 모를 일이다.

파업은 힘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가의 보도’가 됐다. 아무리 지금의 세상이 노동의 신성함 대신 노동에 유희적 측면이 존재하는 시대가 됐다 하더라도 춘투(春鬪)니 추투(秋鬪)니 하며 ‘유희’(遊戲) 화해서야 되겠는가.
 
오는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지금의 노조는 과연 열사의 정신을 계승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기자의 눈에는 그저 구미속초(狗尾續貂)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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