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삼모사’(朝三暮四)가 과연 상생일까?

신유림 기자 승인 2020.09.21 16:04 의견 0

 

[토요경제=신유림 기자] “상생의 의미로 결제대금을 조기 지급하기로 했다.”

매번 명절이면 대기업들이 늘 경쟁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그러면서 ‘협력사와의 상생 차원’이라는 말은 빠뜨리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조기 지급’은 보통 짧게는 닷새에서 길어야 보름이다.

그런데 과연 그걸 상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중국 송나라 때에 원숭이 기르는 걸 무척 좋아하는 ‘저공’이라는 인물이 살았다. 하지만 원숭이 무리는 점점 늘어나는데 그것들을 먹일 도토리는 갈수록 부족했다.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에 저공은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했다.

결과는? 알다시피 모든 원숭이가 흡족해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다.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를 다루는 방식이 이와 같다. 

어차피 줄 돈, 그저 며칠 일찍 줬다고 그걸 ‘상생’이라 포장하는 사고방식이 놀랍다. 저잣거리의 장삼이사, 장돌뱅이들은 명절엔 당연히 그렇게 하고 살았다. 그것이 명절이고 인심이다. 오히려 명절 전에 주지 않는 ‘놈’이 이상한 거다.

게다가 대기업의 대금 지급 방식은 어차피 매출채권이다. 협력사들은 채권을 현금화하기 위해선 약 5%의 수수료까지 물어야 한다. 

대금 며칠 일찍 받았다고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할까. 또 그나마 약속어음이 아닌 걸 감사히 여겨야 하는 걸까.

이번 ‘추석 상생’엔 삼성, LG, SK, 롯데, GS, 신세계, CJ 등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그중에는 지난해 하도급법 위반으로 벌점이 누적돼 업계 최초로 공정위로부터 입찰 참가자격 제한 요청을 받은 건설사도 있다.

그 건설사 회장은 최근 전경련 전체 회원사에 공문을 보내 “명절을 앞두고 납품대금을 조기 지급해 협력사와의 상생 협력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회장은 틈나는 대로 ‘상생’을 강조한다고 한다.

상생이 의미하는 바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이렇듯 다르다. 아마도 사는 방식 자체가 다른 그들에겐 하청업체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돈도 무릎 꿇고 받아가는 모습이 워낙 익숙해서일 수도 있다. 

또 때만 되면 직원들 동원해 어디 가서 손에 흙 좀 묻히고 땀 몇 방울 흘리는 사진 연출하는 게 ‘사회 공헌’인 줄 아는 그들이기에 하도급 갑질이 ‘정당한 권리 행사’ 정도인 줄로 착각할 수도 있다.

매일 매질을 하다가 하루 정도 건너뛴 걸 부디 ‘사랑’이라고 포장하지 말길 바란다. 그 알량한 ‘선심’은 감히 ‘상생’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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