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탈화석연료 시대, 좌초위기산업의 미래>···정유부문 ②현대오일뱅크

‘탄소중립 그린성장’선언 2050년까지 탄소배출 지속감축

신유림 기자 승인 2020.11.17 14:53 | 최종 수정 2020.11.19 07:47 의견 0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 (자료=현대오일뱅크)

[토요경제=신유림 기자] 본격적인 ‘그린뉴딜’ 시대를 맞아 화석연료를 대체하려는 글로벌 경쟁이 뜨겁다. 하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은 친환경 인프라 구축에 관해선 아쉽게도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친환경정책을 더욱 강화할 전망이어서 전 세계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잣대가 탄소배출량 및 저감 목표 등에 달렸기 때문이다.

이에 환경오염을 초래하는 낡은 산업 구조를 가진 제조업은 이른바 ‘좌초산업’ 군에 속해 국제적 보이콧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 대표적으로 석유화학, 철강, 조선, 자동차, 시멘트 등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데다 같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외국과 비교해 1.5배의 에너지를 사용할 만큼 전 세계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라는 점에서 상당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정유산업은 온실가스의 최대 주범인 화석연료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대표적인 좌초 위기 산업으로 꼽힌다. 특히 정유·화학 분야는 ‘기후 악당’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두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내 전체의 약 30%나 차지한다.

국내 정유사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에쓰오일 960만톤, GS칼텍스 805만톤, SK에너지 725만톤, 현대오일뱅크 713만톤 순이다.

이에 석유사들은 최근 석유·가스 생산량을 감축하는 등 탄소 배출 절감에 노력하고 있으나 석유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만큼 청정에너지로 급히 사업 방향을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

현대오일뱅크, ‘탄소중립 그린성장’선언 2050년까지 탄소배출 지속감축

■ 과거

현대오일뱅크(대표 강달호)는 정유 4사 중 가장 신생업체이지만 그 뿌리는 1964년 장흥식 창업주가 설립한 ‘극동석유공업’이다. 민간기업으로는 최초의 정유사다.

현대그룹이 관여하기 시작한 건 1977년이다. 당시 극동은 네덜란드 회사와 합작한 ‘극동쉘석유’였는데 현대가 일부 지분을 사들인 후 ‘극동석유’로 바꿨다. 이후 1988년 ‘극동정유’를 거쳐 1993년 현대그룹이 완전히 인수하면서 ‘현대정유’가 됐다.

현대정유는 1994년 업계 최초로 ‘오일뱅크’라는 정유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 ‘현대정유판매’라는 별도의 판매조직도 갖췄다.

1999년 한화에너지 정유부문 및 한화에너지프라자, 현대정유판매를 각각 인수·합병한 뒤 아랍에미리트 연방인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IPIC)와 합작계약을 맺었다. 2000년 현대정유그룹으로 독립했으나 유동성 위기를 맞으며 IPIC에 경영권이 넘어가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2010년 현대중공업그룹이 IPIC와 법정 분쟁을 벌인 끝에 다시 인수한 후로 현재까지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로 남아있으며 기업공개(IPO)는 하지 않고 있다.

■ 현재

현대오일뱅크는 2500여개의 주유소를 보유, 주유소 수 기준 업계 2위다. 지난 5월 SK주유소 302개를 인수한 영향이다.

당시 현대오일뱅크의 행보엔 물음표가 붙었다. ‘탈화석연료’ 시대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사가 지나치게 현금만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사측은 주유소를 각종 서비스와 연계한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이 큰 그림의 효율성과 완성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기후악당’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해 내뿜은 탄소배출량은 713만톤에 달했다. 국내 전체 탄소배출량이 약 7억톤이므로 현대오일뱅크 한 곳이 전체의 1%를 차지한 셈이다.

다수의 사건·사고도 일으켰다.

2018년 대기오염물질 자동측정기기를 운영하면서 3년 동안 허술한 분석자료를 한국환경공단에 제출했으며 당시 허가받지 않은 크롬도 배출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특히 유증기 유출사고는 유명하다.

2018년 11월 충남 서산의 대산 공장에서 고로화 공정 중 냉각수가 고온으로 배출돼 유증기가 일대 마을로 번져 주민들이 악취로 고통받았다. 인근엔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지난해 4월에는 역시 대산 공장에서 근무하던 협력업체 직원 세명이 폐유저장시설 밸브 교체 작업과정에서 새어 나온 유증기에 질식해 쓰러졌다. 그중 한명은 결국 한달 후에 사망했다.

올해 4월에도 유증기 유출 사고가 또다시 발생해 급기야 마을 주민 전체가 시위에 나섰다.

주민들은 “현대오일뱅크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진심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거대공룡의 힘으로만 누르려 한다”며 “아무리 외쳐대도 귀 막고, 눈 막고, 주동자를 회유하며 덮어버리려는 초강력 갑질에 더이상 휘둘리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최근까지 100회에 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한편, 현대오일뱅크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아람코)이 보유한 17%의 지분을 제외하면 범현대가가 지분을 독점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 74.13%, 현대자동차 4.35%, 현대제철 2.21%, HDC 1.35% 등이다.

자연히 현대중공업그룹의 든든한 현금 곳간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조선업계가 극심한 경영난을 겪을 때도 현대중공업이 큰 위기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건 현대오일뱅크의 막대한 현금 덕이었다.

이 때문에 현대오일뱅크를 자회사로 남겨두는 이유가 일종의 ‘보험’ 성격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위기를 대비하고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할 때 IPO를 통해 현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두산인프라코어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 중이다. IPO 추진의 적기인 셈이다. 지난해 아람코에 지분을 매각한 것도 IPO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이었다.

현대중공업과 아람코의 주식 거래는 상장 전 지분 투자(프리IPO) 성격이다. 프리IPO란 정식 IPO를 하기 전 미리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부터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최대주주(지분 63%)이기도 하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자료=현대오일뱅크)

■ 미래

석유제품 수요 감소에 대응해 2010년 이후 아로마틱 석유화학과 윤활기유, 카본블랙 등 다양한 비 정유 사업 분야를 확대한 현대오일뱅크는 내년 12월 상업가동을 목표로 올레핀 석유화학 공장인 HPC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HPC는 납사 대신 저렴한 중질유 성분과 잉여가스를 주원료로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 다양한 석화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일반 NCC보다 높은 원가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사업도 기존 생산설비 보완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며 대체 에너지원 등의 신규 사업 아이템 발굴로 세계를 선도하는 에너지, 화학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는 탄소배출량 줄이기에도 힘쓰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8월 지속 가능 성장 기반 구축을 위해 ‘탄소중립 그린성장’을 선언했다.탄소배출량을 단계적으로 줄여 2050년에는 지난해 대비 약 70% 수준으로 억제할 계획이다.

지난해 678만톤에 달했던 탄소배출량은 2050년 499만톤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목표 저감량 179만톤은 소나무 1270만그루를 새로 심어야 정화할 수 있는 양이다.
이 과정에서 관련 신사업에 진출해 미래 성장동력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탄소중립 성장은 사업 성장에 따른 탄소배출량 증가와 동등한 수준의 감축활동을 펼쳐 탄소배출 순 증가율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다.

국내 정유, 석유화학사 중 일반적 탄소중립 성장 대신 미래 탄소배출량을 현재 수준보다 대폭 줄이는 친환경 성장전략을 공표한 곳은 현대오일뱅크가 유일하다.

목표의 상당부분은 관련 신사업 진출로 달성한다. 먼저 국내 연구기관, 협력 업체와 공동 연구해 공장 가동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탄산칼슘과 메탄올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탄산칼슘은 시멘트 등 건설자재와 종이, 플라스틱, 유리 등의 원료로 사용되고 메탄올은 차세대 친환경 연료와 플라스틱, 고무, 각종 산업기자재를 만드는 데 쓰인다.

현대오일뱅크는 내년 하반기부터 이들 기술을 순차 상용화할 방침이다. 이를 통한 예상 감축량은 연간 54만톤에 이르며 상용화가 완료되는 2030년부터는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 개선효과도 기대된다.

기존 공장 운영도 친환경 방식으로 전환한다. 2024년까지 현재 보유 중인 3기의 중유보일러를 LNG보일러로 교체한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외부 공급 전력도 2050년까지 전량 신 재생에너지로 대체해 연간 총 108만톤의 탄소배출을 감축할 방침”이라며 “HPC 등 공장 신증설로 증가되는 탄소 배출은 친환경 에너지 분야 투자로 상쇄할 계획이며 기존 주유소, 충전소 플랫폼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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