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수,열수,경강 그리고 한강 - 24

만리동 너머 젖갈장수 걷던 길 - 1

강세훈 기자 승인 2020.11.18 16:11 의견 0

한강길 코스를 만들 때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한강에서 마무리할지, 아니면 원점에서 마무리할지, 원점에서 마무리한다면 한강에서 청계천이 시작한 곳까지 어떤 연관이 있을지 찾아야했고, 한강에서 마무리한다면 어느 곳이 적합할지 찾아야했습니다. 한강에서 가장 중심이 되었던 포구는 마포와 용산 주변이었습니다. 상업적인 물류가 발달했고, 세곡선이 머물기도 하였고, 마포아래 양화나루는 서부지방의 길목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발달하고 교역이 컸던 곳은 마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포구에 내려진 물품들은 마포를 출발하여 만리재를 넘어 현재의 염천교쪽으로 넘어와 서소문이나 숭례문을 이용하여 도성 안으로 물품을 옮겼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강길 코스의 마지막은 한강이 아닌 내륙의 도심을 따라걷는 상인들의 길을 모티브로 정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강길은 원점 순환형 코스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여정을 시작할까 합니다.

다시 한강을 건너서, 마포대교, 여의나루역

지난번 코스는 여의도에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어서 걷기 위해 마포대교를 건너 옛 마포나루가 있던 곳을 거쳐갑니다. 마포대교 앞 여의나루역은 옛 여의도에 있었던 나루에서 명칭을 가져왔습니다. 건설 당시 밤섬역으로 명칭이 정해졌었는데 5호선이 개통되기 직전에 여의나루역으로 변경었습니다. 한강 주변에 있는 전철역은 대부분 지상에 있는 반면에 몇 군데는 지하에 존재하는데 한강하저 터널을 통해 지하철이 운행되기 때문에 지하 깊숙한 곳에 역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마포역과 여의나루역은 꽤나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지하 42.5m에 역사가 설치된 여의나루역은 서울에서 가장 깊은 역이되었습니다. 전국의 지하철역 중에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곳은 지표면 기준으로 부산의 도시철도 3호선 만덕역으로 지하 64.25m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강 주변에는 나루가 많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루터로 인해 마을이 생기고 유통의 거점이 되면서 한계에 이릅니다. 그래서 나루 주변이 확장되거나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서 다리가 놓여 나루의 기능을 대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강의 다리의 위치를 보면 예전의 나루터 위치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마포대교를 보면 북측에는 마포나루가 있었고 남측에는 여의나루가 있었습니다. 한남대교의 경우, 북측의 한강진과 남측의 사평나루를 연결한 다리이며, 다리 공사하는 동안에도 나루터의 기능이 있었음을 예전 기록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나루터는 단순히 배를 타고 내리는 정도의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왕래가 빈번해져서 다양한 기능이 접목되었습니다. ‘나루‘의 어원은 짐을 나르다에서 유래되었고 사람이나 물건을 나르던 ’나루’가 커지고 확대됨에 따라 ’나라’라는 말로 변하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교통이 편한 곳을 역세권이라고하여 중요거점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나루가 이러한 역할을 했었습니다.

여의나루역에서나와 마포대교를 따라 서울 중심지로 걸어가보려 합니다. 마포대교는 생각보다 오래전에 건설된 다리입니다. 1960년대까지 한강에 다리는 광진교, 한강대교(인도교), 한강철교, 한남대교, 양화대교 정도였으며 이후 1970년에 서울대교라는 이름으로 개통되었다가 이후에 마포대교로 이름이 바뀝니다. 교통량이 많아짐에 따라 마포와 여의도를 통해 영등포 방향으로 길을 내면서 마포대교가 필요하여 건설하였습니다. 1970년대까지 한강다리의 특징은 교각을 많이 설치하고 디자인도 단순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강 개발과 함께 수많은 다리가 건설되면서 다양한 건설기법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디자인이 가미된 멋진 다리가 건설되었습니다. 마포대교는 자살을 하기위해 많이 찾는 다리라는 오명이 있어 이를 방지하기위해 마포대교 중간에 자살방지를 위한 `한 번만 더 `라는 제목이 붙은 동상을 설치하고 다리 난간에는 아름다운(?) 문구가 쓰여져 있었는데 지금은 이보다 난간의 높이를 높이는 방식으로 방지하고 있습니다. 마포대교는 영화의 촬영지로 소개되기도 했었습니다. 2014년에 개봉한 어벤저스2 와 2013년에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에서 마포대교가 폭파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젓갈장수가 걸었던 길, 마포구 도화동과 마포종점비

마포대교 북단에서 인도를 따라 내려가면 한강공원과 마주하며 토끼굴을 통해 마포종점비가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합니다. 마포의 어원을 찾아보면, 마포는 ‘삼개나루‘로도 불렀는데 삼개는 `삼 밭이 있는 강가` 라는 의미로 삼개나루의 한자식 표기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조선 중기이후 서해안과 한강 상류를 연결하는 수상교통 요충지이자 삼남지방(충청, 경상, 전라)에서 올라오는 일반 상품들이 하역되고 매매되는 상업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발달하였고 이로 인해 마포까지 이어지는 전차가 처음으로 개설되기도 하였습니다. 마포나루에서 하역한 어패류들은 보관을 쉽게 하기 위해 소금을 넣어 염장하거나 젓갈로 만들어 한양의 칠패시장이나 시전으로 운송되었습니다. 특히 강화도를 비롯한 서해안에서 잡은 새우를 젓갈로 만들어 마포에서 주로 거래를 하였고 한양으로 운송되는 대표적인 수산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마포구는 매년 10월경에 도화동 일대에서 치르던 새우젓축제를 2008년 이후 구단위로 축제로 격상하여 운영해왔으나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마포구 새우젖축제 입항시연 - 마포구 홈페이지 출처


마포종점비가 있는 이곳은 한양에서 마포나루가 있던 이곳까지 전철이 개설되었다가 1968년 전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은방울자매가 발표한 노래의 가사를 적어놓은 시비가 세워졌습니다. 실제로 마포종점은 이곳이 아니라 공원에서 정면으로 보면 불교방송국 빌딩이 있는데 그 아래가 전차의 종점이었던 곳이자 3.1만세운동의 시위지였음을 말해주는 표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전차를 받아들인 것은 무척이나 빨리 신문물을 받아들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고종은 전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한성전기주식회사를 설립한 최초의 황제였고 이를 통해 최초로 홍릉과 종로를 잇는 전차를 개설한 이후 마포까지 연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양의 전차 개통은 아시아에서는 일본 교토에 이어 두 번째로 설치된 것이고 국내에서는 최초로 개설된 전차입니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전차의 모형을 구 화랑대역 공원에서 보실 수 있으며 당시 전차의 운임은 5원 정도였고 탑승하면 청량리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포종점비가 있는 곳을 시작하여 도화동 마을길과 먹자골목길을 따라 공덕역까지 걸어갑니다. 실제로 이 방향으로 걸었는지는 지금 알 수 없으나 큰 대로가 있다는 것은 예전에도 길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이나 도로는 쉽게 바뀌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단지 넓어지거나 개선을 통해 모습만 바뀔 뿐입니다. 마포나루에서 하역한 새우젓을 운반하는 상인은 지금의 마포대로를 따라 공덕역 로타리를 거쳐 만리동고개로 넘어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경의선 본선이 지나갔던 곳, 경의선숲길 공덕동구간

도화동 먹자골목을 나와 경의선숲길에 다다르면 오른편 언덕을 보면 탁 트인 공간을 만나고 왼편으로는 새롭게 건설된 건물이 빗장걸 듯이 딱 막아 섭니다. 경의선 숲길의 공덕역 구간인 이곳은 예전부터 높고 낮은 언덕이 많았던 곳입니다. 좀 높은 구릉지대를 덕이 또는 언덕이라고 부르는데 ‘공덕‘이라는 말도 제법 큰 언덕이 있었다는 곳을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언덕을 의미하는 단어는 다양한 말로 표기를 하는데, 현(峴), 치(峙), 점(岾), 항(項), 재(岾), 파(坡), 령(嶺) 등으로 사용하며 ’항‘은 안부를 의미하는 말로서 그리 높지 않은 고개에 붙여서 쓰던 말이며, ’치‘는 고개라는 뜻으로 관북과 영남지방에서 주로 사용했었습니다. ’령‘은 단순히 고개보다 산봉우리가 연결된 곳 중에 산굽이가 낮은 곳을 의미하며 ’현‘은 령(嶺)위에 평탄한 곳인 고갯마루를 의미합니다. 서울 주변을 보면 대체로 ’현‘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동네가 많은데 이런 곳은 전에 고갯마루가 있었던 장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덕동 일대는 만리현(또는 만리재), 아현(애오개), 대현(큰고개) 등으로 불리는 고갯마루가 있었고 그중에 한양으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은 아현으로 가는 길이였으나 편하게 넘을 수 있는 길이 만리현이었습니다.

경의선은 1906년 용산-신의주구간이 완성되면서 운행이 시작되었고, 용산역이 첫 시발점이였기에 현재 공원으로 운영되는 이곳이 본선에 해당합니다. 이후 경부선이 완공되면서 용산을 거쳐 남대문역(이후 경성역, 지금에 서울역)이 연장되어 서울 중심으로 가깝게 연결되면서 우회선인 가좌선이 신설되어 서대문구에 있는 가좌역에서 2개의 경의선 노선이 합류합니다. 지금은 본선은 공원화되었고 지선이었던 가좌선을 이용하여 경의선이 문산역 또는 임진각역까지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경의선은 1911년에 압록강 철교가 완공되면서 만주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국제 철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이 열차를 이용한 사람 중의 한 명이기도 합니다.

경의선숲길공원은 삼각지역 근처 용산역 분깃점에서 시작하여 가좌역 앞 홍제천까지 이어지는 6.5km의 공원이며 구간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에 기증함에 따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로 공원화 작업을 하였는데 마포구 구간은 이러한 의의와는 달리 공원 사이에 커다란 건물이 세워져 있어 뻥 뚫린 빌딩 속 사이를 제방으로 막아놓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심 속 바람길이 마포구 공덕역과 홍대입구역에서만 막혀 있으며 다른 구간은 시원스레 뚫려 있는 개방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한강길 코스에서는 경의선숲길은 아주 짧게 지나쳐 갑니다. 경의선숲길을 걷고 싶다면 숲길 양쪽 어느곳을 통해서 걷더라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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