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분명히 깨진 바가지인데 물이 안 샌다

신유림 기자 승인 2020.12.17 15:20 의견 4

(일러스트=신유림 기자)

[토요경제=신유림 기자] 16일 20만 명의 동의를 넘긴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제목도 자극적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합니다."

20만 명에게 동의를 받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온갖 잡다한 청원도 받아쓰는 언론이 잠잠하다. 이 청원을 보도한 언론사는 단 네 곳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쥐죽은 듯 조용하다. 객체가 현대차여서일까.

청원인은 자동차 전문 매체이자 유튜브를 운영하는 ‘오토포스트’다. 오토포스트는 지속적으로 현대차를 저격하는 영상을 올리다 결국 지난달 현대차 측으로부터 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한 상태다.

오토포스트는 청원 글에서 ▲제네시스 G70 화재 ▲K5 진동·떨림 ▲그랜저 엔진오일 감소·화재 ▲제네시스 엔진 진동·떨림·변속기 로직 문제·시동 꺼짐 ▲펠리세이드·쏘렌토 시동꺼짐·에바가루 등 현대기아차의 품질문제를 거론하며 “최근 품질 경영을 선언한 현대차그룹은 문제를 덮기에만 급급했을 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청원은 비단 현대차를 겨냥한 것만이 아니라 현대차의 차량 결함을 제대로 다루지 않은 정부기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소송을 당한 유튜버는 또 있다. ‘인싸케이’다. 그런데 인싸케이에 대한 소송 사유가 약간 특이하다. 저작권법 위반이다. 현대차가 홍보용으로 제작한 광고 영상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다. 인싸케이가 올린 현대차 저격 영상의 사실 여부를 문제 삼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두 유튜버가 지나치게 현대차를 공격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차가 최근 이상하리만큼 품질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회사 측은 문제를 시원하게 인정하지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외국에선 선제적 리콜을 빈번이 하면서도 국내에선 리콜과 관련한 잡음도 많다. 청원인의 주장대로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다’는 표현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 때문에 이들에 대한 현대차의 소송은 ‘논란 해소’라기보다 ‘메신저 공격’ 전술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의선식 통 큰 결단’으로 화려하게 포장된 품질비용 3조4000억 원도 따지고 보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일이다. 품질 논란을 자인한 셈이 됐으니 말이다.

“왜 우리에 대해 그렇게 안 좋은 기사만 쓰세요?”, “계속 토요경제에 계실 거에요?”

얼마 전 수화기 넘어 들려온 현대차 홍보팀 직원의 말이다. ‘뭐지?’ 싶었다. ‘회사의 위상이 말이 아니구나’ 생각도 들었다.

또 최근 기자들 사이에서 웃지 못할 소문도 돌았다. “현대차가 언론사들을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한다.”, “앞으로 ‘현까’ 기자들은 홍보팀과 통화하기도 힘들 거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기자에겐 그랬다. 이후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늘 까였다.

현대차가 정의선 체제 들어 이상해졌다. 소통을 중시한다더니 오히려 강경해졌다. 게다가 언론을 이용하는 데 더 능숙해졌다.

소송의 결과가 기대된다. 과연 그 유튜버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이었는지, 혹여나 일부 허위가 전체 허위로 포장되는 건 아닌지, 과거 현대차로부터 9건의 소송을 당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분받은 국내 자동차 정비명장 1호 박병일 씨 사례가 또 나올지 등등.

기자는 언론사에 첫발을 딛고서 한동안 ‘멘붕’이 왔었다. 우리 사회 곳곳이 이럴 줄이야.

기업과 사회, 언론은 건강한 긴장 관계여야 한다고 믿는다. 깨진 바가지도 때워주는 그런 관계라면 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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