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두 가지 달력

김영린 승인 2021.01.04 05:36 | 최종 수정 2021.01.04 05:37 의견 0

사진=픽사베이


페르시아의 임금 다리우스가 북쪽 땅을 점령하기 위해 출발했다. 중간에 다뉴브가 가로막고 있었다.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라고 했지만, 군사들에게는 강의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가 있을 수 없었다. 건너기 바쁜 ‘장애물’일 뿐이었다.

다리우스는 군사들을 시켜서 다리를 놓도록 했다. 그래야 막대한 군수물자도 운반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리를 건너 북상하면 두 달 안에 적과 한바탕 전투를 치르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용의주도했다. 만약에 패할 경우, 적이 오히려 아군이 만들어 놓은 다리를 건너서 페르시아를 역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리우스는 다리에 수비대부터 배치했다. 자신이 북으로 진격했다가 되돌아올 때까지 두 달 동안 다리를 누구도 건널 수 없도록 지키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그 두 달이 문제였다. 오늘날 같았다면 “○월 ○일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다리를 폭파하고 철수할 것”이라고 지시하면 간단하고도 남았다. 그러면 다이너마이트로 간단하게 파괴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수비대 군사들은 두 달이라는 기간조차 헤아릴 만한 지식이 없었다. 무식하고 무지했다.

그래도 그 한심한 군사들에게 수비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리우스는 머리를 굴린 끝에, 가죽채찍에 끈으로 매듭 60개를 달았다. 그 채찍을 수비대 지휘관에게 맡겼다.

“매듭을 하루에 꼭 하나씩만 풀어라. 마지막 매듭을 풀어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다리를 파괴하고 철수해라.”

다리우스는 그렇게 지시를 한 뒤에야 다뉴브를 건널 수 있었다.

다리우스는 그처럼 철저하면서도 결국 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부하 지휘관이 다리우스의 명령을 충실하게 지킨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하며 후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다리우스는 그 원정을 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달력’의 필요성이었다. 달력이 있었더라면 구차스럽게 매듭 따위를 달면서 지시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달력은 전쟁 때문에 고안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새해를 ‘복주머니’로 시작했다. 연초가 되면 복주머니에 곡식을 넣고 다니면서 풍년을 기원한 것이다. 임금이 신하들에게 복주머니를 나눠주기도 했다.

중국 사람들은 “새벽에 별자리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그해에 풍년이 들 것인지, 흉년이 들 것인지 미리 알았다”고 우리 풍속을 기록하고 있다.

그랬으니, 우리 달력은 ‘희망의 달력’이었다. 풍요를 기다리는 달력이었다.

지금 두 가지 달력이 있었으면 싶어지고 있다. 하나는 코로나19 때문에 작년 내내 꼬인 매듭을 이것저것 풀어나가는 달력이다. ‘비대면’이 대세가 되는 바람에 꼬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아지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가 백신을 비웃으며 빠르게 확산, 세계를 다시 움츠리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삼스러워지는 ‘희망의 달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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