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된 ‘중대재해법’···기업 압박에 꼬리 내린 정치권

신유림 기자 승인 2021.01.06 12:13 의견 0

정의당 김종철 대표와 강은미 원내대표 등이 6일 국회 본청 단식농성장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관련 대표단 - 의원단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기업의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 책임 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토요경제=신유림 기자] 이른바 ‘기업살인법’이라 불리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기업들의 거센 반발로 원안보다 상당히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사망사고 발생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처벌 수위는 기존 2년 이상의 징역에서 1년 이상으로 낮췄고 벌금 역시 5000만 원 이상 10억 원 이하에서 하한선을 없애기로 했다. 다만 징역과 벌금을 함께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사망자 발생에 따른 법인 처벌 조항인 ‘양벌규정’ 하한선도 없앴다. 기존 법안에선 최소 벌금이 1억 원이었지만 경우에 따라 더 가벼운 처벌이 가능해졌다. 대신 상한선을 기존 ‘20억 원 이하’에서 ‘50억 원 이하’로 높였다.

법인에 부과하는 벌금의 경우 고의가 인정됐을 때 매출액의 10%를 벌금에 가중한다는 조항도 삭제됐다.

특히 법 적용 대상은 완화되고 유예 기간은 늘어났다. 애초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발의안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은 4년간 유예토록 한 바 있다.

여기에 정부가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2년간 유예할 것을 제안한 데 이어 이날 다시 300인 미만 사업장까지 그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5일 여야는 법사위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합의했다. 법안은 오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정의당과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법인 벌금 상한액 50억 원은 대기업의 경우 법의 효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단히 미약한 액수”라며 “벌금에 매출액 10%를 가중하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노동계는 “기업처벌이 약화된 누더기 법안”이라고 비난했다.

금속노조 홍지욱 경남지부장은 “중대재해법은 반복되는 산재사망사고를 멈추는 기본적인 조치이자 노동자의 안전한 일터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라며 “정부안으로 할 바에는 제정 안 하는 게 나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전국 업체 99%가 100명 미만 사업장이고 사고사망자 86.1%는 10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며 “정부안대로라면 노동자 대부분은 여전히 중대재해 위험에 놓이게 되고 원청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정부에 대해 더 가질 희망도 없다”며 “온전한 법 제정과 노동자 생존권 보장·고용 안정 등을 위해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법안소위 위원장인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중대재해법의 적용 범위가 넓고 다양한 형태의 재해가 발생할 수 있어 형의 하한은 낮추는 대신 상한은 높였다”며 “임의적 병과(동시에 둘 이상의 형벌에 처하는 것)를 가능하게 해 피해자 보호를 두텁게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합의안은 업계의 반발과 압박의 결과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경영자 측은 “만일 법안이 통과되면 과도한 처벌규정으로 인해 경영 의욕이 꺾일 뿐 아니라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하청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의 수주가 큰 폭으로 감소할 수 있다”고 했다. 원청이 안전관리 비용 부담 때문에 사업 확장을 주저하거나 도급을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들 역시 법안에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김임용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직무대행은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우려되는 정도가 아니라 이 법안 자체가 안 된다는 이야기”라며 “코로나19 판국에 이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경영자 측 주장은 한마디로 정부를 겁박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중소기업 일감의 절반가량은 대기업의 하청 물량인데 산재의 대부분은 대기업이 자행하는 위험의 외주화나 하청기업 쥐어짜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의 극심한 반발은 그들이 얼마나 인명을 경시하고 있는가를 증명하는 꼴”이라고 했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중소기업 중 수급을 받는 기업 비중은 42.1%이며 수급기업 매출액의 83.3%는 위탁기업 납품에서 나왔다.

또 2018년 국내 산업재해 발생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은 근로자 안전지침 미준수(47.9%)로 나타났다.

그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수록 그 구성원들이 자긍심으로 헌신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실제로 선진국은 산재 처벌 강화로 기업들이 산업 안전에 집중, 결국 경영도 더 안정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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