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류법은 빛 좋은 개살구?…'분류작업' 책임은 누구

김시우 기자 승인 2021.01.11 14:52 의견 0
(자료=연합뉴스)

[토요경제=김시우 기자] 국회 본회의에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 이른바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법’이 속전속결로 통과됐다.

그러나 과로사의 원흉이었던 ‘분류작업’과 관련한 책임 소재가 명시되지 않아 '반쪽짜리' 법으로 남을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회는 지난 8일 본회의를 열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재석 239명 가운데 221명이 찬성했다. 반대는 3명, 기권은 15명이었다.

제정안은 택배 서비스 사업과 소화물 배송대행 서비스 사업을 '생활물류서비스사업'으로 제도화하고 택배 서비스 사업 '등록제'와 소화물 배송대행 서비스 사업자 '인증제'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또 택배 서비스 종사자의 보호를 위해 위탁계약 갱신청구권을 6년간 보장해 안정적인 계약을 유도할 수 있도록 했다.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표준계약서 작성·사용을 권장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택배 서비스 종사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화물을 분실·훼손, 소비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택배 서비스 사업자에게 연대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는 소비자 보호 규정도 마련했다.

문제는 택배기사의 직접적인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되는 분류작업이나 배송단가 등의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원인으로 지적됐다. 노조는 배송 외에도 5~6시간 걸리는 분류작업이 과로사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와 택배회사에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요구해 왔다.

지난해 6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생활물류법 원안에는 택배기사의 업무 범위에서 분류작업을 제외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택배업계의 반대로 수정안에서 삭제됐다.

이 때문에 생활물류법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택배회사가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택배기사에게 분류작업을 지시할 경우 피고용인인 택배종사자 입장에서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 과로사 문제는 끝나지 않을 거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 분류작업은 택배종사자나 영업점 업무로 명시되지 않아 업무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놓고 택배업체와 노동자간 입장이 대립되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국토부는 분류작업의 명확화를 ‘사회적 합의기구’에 포함하고 이를 시행령이나 표준계약서를 통해 보완하자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하지만 현재 사회적 합의기구에서는 택배회사들이 ‘분류작업은 사용자 책임’이라는 1차 합의를 파기하고 국토부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택배회사들은 “분류업무는 배송업무에 포함된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1월 택배 과로사 대책을 발표하며 노사와 국회, 정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분류작업 문제를 비롯한 쟁점 과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5일 열린 사회적 합의 기구 1차 회의에서는 분류작업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이 자리에서 분류작업은 택배회사의 업무로 잠정 합의됐다.

그러나 같은 달 29일 2차 회의에서 통합물류협회가 ‘분류작업은 택배회사의 업무가 아니’라면서 합의를 파기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물류협회는 “잠정 결론이기에 합의 파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택배업체와 노동자간 갈등이 부딪히며 분류작업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놓이고 있다.

한편 국토부는 생활물류법의 분류작업의 모호성을 인정하고 분류작업 명확화를 지난해 12월 출범한 ‘사회적 합의기구’에 포함, 시행령이나 표준계약서를 통해 보완키로 했으나 노동계와 사업자간 이견이 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합의기구는 택배 분류 명확화, 주5일제 등 작업조건 개선 등을 논의 중이다. 정부는 12일 열릴 3차 회의에서 보다 진전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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