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프로와 아마추어 차이···‘신의 한 수’ SKT 저가 요금제

신유림 기자 승인 2021.01.11 17:21 의견 0

[토요경제=신유림 기자] ‘프로와 아마추어는 한끗 차이’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대표적 두뇌 스포츠인 바둑을 보면 가끔 프로기사가 아마추어 기사를 상대로 이벤트 대국을 하곤 한다. 프로기사는 -큰 착각을 하지 않는 한- 상대가 그 바닥에서 제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을 보유했더라도 거의 갖고 놀기 마련이다.

프로가 괜히 프로인가. 프로는 맘먹기 따라 겨우 반집 차로 이기도록 둘 수도 있다. 한끗 차이로 보이게 만드는 게 바로 프로다.

최근 이런 장면이 SK텔레콤과 정부 여당 사이에서 일어났다.

정치권의 계속된 통신요금 인하 압박으로 SKT가 가장 먼저 3만8000원, 5만3000원짜리 저가형 5G 통신요금제를 내놨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벌집을 쑤신 꼴이 됐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요금제는 겉과 속이 달랐다.

표면적으로는 기존 요금제보다 30% 저렴하다고는 하나 이 요금제는 온라인 전용인 자급제폰이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에도 자급제폰을 이용하면 25%를 할인받을 수 있다. 결국 5% 추가 할인에 불과한 것이었다.

게다가 단말기 보조금, 약정 할인도 없고 가족 결합 때 적용하던 요금 인하 혜택도 없다. 심지어 기존의 가족 3인 결합 요금제보다도 약 8000원이 더 비싸다. 더구나 회사로서는 마케팅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어 오히려 이윤이 더 난다.

미국 농담에 이런 게 있다. "좋은 말 다음에 But이 나오면 그 말은 다 Bullshit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과 간사 등 여당 의원들은 ‘But’ 다음에 나오는 조건은 염두에 두지도 않고 환영 논평부터 내 문제를 키웠다. 뭐가 그리 급했길래.

이로 인해 SKT와 조율을 거쳐야 하는 과기정통부는 요금제의 허점을 알면서도 반려하거나 추가 논의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우리가 뭔 말을 하겠나. 공무원으로서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SKT가 신고한 요금제를 객관적으로 심의해 15일 안에 받아줄지, 반려할지를 결정할 뿐”이라는 과기정통부 관계자의 언급은 이 상황이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덩달아 알뜰폰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SKT 신규 요금제는 알뜰폰 요금제와 차이가 없어 사업자들을 고사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알뜰폰 업계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망 사용료를 깎아 요금을 더 낮추는 것뿐이다. 업계도 이를 절실하게 원하고 있지만 글쎄.

이에 SKT와 정치인을 향한 비판이 줄을 잇는다.

첫째, SKT가 조삼모사식 온라인 전용 요금제로 정부와 시민단체의 압박을 피해 가는 꼼수를 부렸다는 것.

둘째, 국회의원이 생색내기에 급급해 과기정통부가 문제를 보완할 기회조차 날렸다는 것.

난감한 건 공무원이다. 이 요금제를 시행할 수도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역시 SKT는 프로였다.

절묘한 ‘신의 한 수’로 여당 의원에게는 부끄러운 ‘정신 승리’를, 공무원에게는 ‘진퇴양난’을, 알뜰폰 업계엔 ‘끼니 걱정’을, 게다가 자사엔 ‘실익’을 안겼다.

혹여 요금제가 반려돼도 SKT는 걱정할 일이 없게 됐다. 책임은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있으니 말이다.

이번 일을 통해 아마추어의 압박은 프로엔 안 통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어떤 정치인처럼 “살려주세요~”하며 읍소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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