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동학개미 지갑 터는 테마주

김영린 승인 2021.01.25 05:54 의견 0
사진=픽사베이


1980년대 ‘6·29 민주화 선언’ 이후 증권시장에서는 주가가 엄청나게 치솟고 거래대금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루 주식거래대금이 ‘조’에 달하기도 했다.

말 잘 만드는 증시 주변에서는 이를 ‘민주화 장세’라고 불렀다. ‘민주화 주가’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주가가 폭등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상장기업의 영업실적이 별안간 좋아진 것도 아니었고, 뚜렷하게 좋아질 전망도 아니었다.

오히려 ‘민주화’가 되면 주가가 되레 떨어질 만한 상황이었다. ‘민주화’에 따라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특혜가 줄어들고, 노사관계도 복잡해질 여건이었다. 노조의 요구로 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기업의 영업이익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따라서 주가에는 ‘악재’였다. 그런데도 주가는 연일 치솟고 있었다. 이를테면 증권시장에 상장된 종목 대부분이 이른바 ‘정치 테마주’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 결과는 주가의 폭락으로 나타났다. 1989년 ‘12·12 조치’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 주가를 떠받쳐야 했다. 증권시장이 정치바람을 탄 후유증이었다.

지금은 그 ‘미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선거바람이 불 듯 싶으면 정치 테마주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재명 테마주’, ‘안철수 테마주’, ‘박영선 테마주’, ‘나경원 테마주’ 등이 등장하고 있다. 그 종목 수가 제법 되고 있다.

몇몇 기업의 경우는 ‘정치’와 무관하다고 해명을 해도 정치 테마주로 간주되고 있다. 증권당국은 정치 테마주가 요동을 칠 때마다 투자자 피해 예방대책을 마련하고 조사에 나서는 등 바빠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테마주라는 것은 우리 정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적어도 민주화가 된 국가라면, 어떤 정당이 집권하고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국민의 생업이나 기업 경영과는 무관해야 정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생업과 경영 환경이 흔들린다면 민주화된 사회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측근이 득세하고, 친인척이 돈을 벌고 있다. 그런 ‘과거사’가 적지 않았다.

기업도 정권에 잘 보이면 성장하고, 밉보이면 고생이다. 그런 사례를 국민은 여럿 보아 왔다.

그래서 누가 정권을 잡으면 잘 나갈 듯싶은 기업의 주가가 오르고 '테마주'로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테마주에 ‘정치인의 이름’이 ‘수식어’로 붙는 게 그렇다. 후진적인 정치가 증권시장을 후진시키는 셈이다.

그 테마주 덕분에 돈 좀 만지는 것은 소위 ‘작전세력’이다. 작전세력은 테마주의 가격을 띄웠다가 차익을 톡톡하게 챙기고 있다. 투자자들은 번번이 ‘상투’나 잡고 있다. 요즘 테마주는 동학개미의 지갑을 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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