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선업 세계 1위?··· ‘에밀레종’ 소리일 뿐

신유림 기자 승인 2021.01.25 16:09 의견 0

[토요경제=신유림 기자] 한국 조선업이 지난해 글로벌 수주량에서 중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국에 크게 밀리던 한국 조선업의 역전극이었다.

하지만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기쁨보다는 하청업체들의 눈물이 먼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가 보다.

“조선업? 야, 징글징글해. 그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다른 분야를 파.”

조선업계 동향에 대한 질문을 받은 어느 선배 기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까도 까도’ 꿈쩍도 안 해. 하청업체들 고통은 이루 말할 수도 없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야.”

그랬다. 굴지의 조선사들의 갑질 뉴스는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그 유명한 ‘선 시공 후 계약’이 가장 많은 곳도 조선업이었다. 본사 앞에서, 국회 앞에서, 서울 광화문에서 천막 치고 농성하는 이들.

자살, 산재 사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조선업계에서 벌어지는 의혹과 논란은 그야말로 ‘징글징글’했다.

공정위도, 법도 먹히지 않는 세상. 그들은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규탄하고 압박해도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황이건 호황이건 하청업체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늘 한결같았다. 그렇게 고혈을 짜낸 돈으로 흥청망청 배당잔치도 했다. 사주 아들 승계 자금이란다. 영업이익이 줄거나 말거나.

게다가 부도 날 걱정도 없다. 잠시만 버티면 정부가 살려주니까. 하청업체들은 어려울 때 방패막이에나 쓰라고 존재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하청업체, 지역 경제 다 죽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이담속찬’(耳談續纂)엔 이런 속담이 있다. ‘아복기포 불찰노기’(我腹旣飽 不察奴飢)-내 배부르니 종 배고픈지 모른다.

노비들은 양반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고 사는데 상전이 음식을 남기지 않아 자신들이 먹을 밥을 새로 하자 “왜 밥을 새로 짓냐”고 호통치는 양반의 세태를 일컬은 말이다.

정말 궁금하다.

하청업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들의 배고픈 모습, 죽어가는 모습이 정말 보이질 않는지.

이런 대기업의 횡포로 한국 조선업이 몰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미 생태계가 파괴됐다고 한다. 젊은 기술자가 계속 배출돼야 하지만 그 고리가 끊어졌다는 뜻이다. 대기업이 변하지 않으면 몰락은 시간문제다.

조선업 세계 1위. 듣기 좋은 말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청업체들의 피와 눈물, 목숨을 녹여 만든 1위인 것을. 그저 씁쓸하게 들릴 뿐이다. 에밀레종 소리가 구슬픈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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