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나라 곳간’ 지킨 월남 이상재

김영린 승인 2021.02.04 05:41 의견 0
사진=픽사베이


조선 말, 월남 이상재(李商在․1850~1927)가 의정부의 총무국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고종 임금이 ‘전운사’라는 관청을 다시 설치하려고 했다. 전운사는 백동화를 남발, 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가 폐지된 관청이었다.

전운사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이상재의 ‘도장’이 필요했다. 결재권자가 이상재였던 것이다.

이상재는 당연히 임금의 뜻에 따라 도장을 찍어야 좋았다. 그렇지만 단호하게 거부했다.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상재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은 어림도 없다”며 버텼다. 전운사가 다시 설치되면, 나라의 재정이 비틀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분분했다. 높지도 않은 벼슬아치가 감히 임금의 뜻을 어기고 물의를 빚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임금도 마침내 역정을 내고 있었다. “이상재의 목에는 칼이 들어가지 않는지 물어봐라”며 발끈하고 있었다.

‘왕조시대’였다. 명령 한마디면 목이 곧바로 달아날 판이었다. 이상재는 그래도 버텼다.

이상재가 이처럼 버티자 몇몇 중신이 임금에게 건의했다. 이상재의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충성스러운 마음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옹호했다.

임금도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전운사의 설치를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이상재는 사라질 뻔했던 목이 붙어 있게 되었다. 다행이라며 고마워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재는 오히려 눈물을 흘렸다. “신하가 임금을 잘못 보필해서 판단착오를 하게 만들었으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은가”하면서 통곡하고 있었다. 이상재는 대쪽을 그대로 닮은 공무원이었다.

‘홍두사미’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했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번에는 그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지울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추가적 재난지원금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 보편 지원과 선별 지원을 한꺼번에 모두 하겠다는 것은 정부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1∼3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추경 편성, 대주주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등을 놓고 여당과 대립하다가 결국 물러서는 바람에 ‘홍두사미’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곳간 사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늘 가슴에 지지지지(知止止止)의 심정을 담고 하루하루 뚜벅뚜벅 걸어왔고 또 걸어갈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지지지지’는 도덕경에 나오는 것으로 “그침을 알아 그칠 곳에서 그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배수진(背水陣)’이라도 친 듯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이 나라가 기획재정부의 나라냐”, “기획재정부의 반대는 개혁 저항이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재정 건전성을 외치면서 무조건 적게 쓰는 것이 능사냐”는 공격도 받고 있었다.

홍 부총리가 이제라도 이상재처럼 ‘나라 곳간’을 지킬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렇지만 홍 부총리의 이번 반격을 보면서 다른 해석도 대두되고 있다. ‘레임덕’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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