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애플이 분노했다고?

신유림 기자 승인 2021.02.08 11:26 의견 0

[토요경제=신유림 기자] 지난 6일 한국인의 분노를 자아낼만 한 보도가 미국에서 나왔다. 블룸버그 통신이 애플과 현대기아차가 진행하던 ‘애플카’ 생산 협상 중단 소식을 전하면서다.

한국 네티즌이 분노한 부분은 “애플이 분노했다”는 블룸버그의 표현이다. 여기에 몇몇 국내 언론은 이를 인용해 “애플이 화났다”고도 썼다.

애플이 ‘분노’한 이유는 현대차의 언론플레이 때문이란다. 현대차가 모호한 스탠스를 취해 기밀유지를 바랐던 애플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마치 현대차가 애플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인 것처럼.

‘분노했다’는 표현은 기업 간 비즈니스 관계에선 쓰지 않는 표현이다. 제아무리 애플이라도 상대가 글로벌 4위의 거대 자동차 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더구나 애플은 자동차 생산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소위 말해 머리만 있고 몸통은 없는 회사 아닌가. 애플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쩌라고.” “갑질 습관 또 나왔네.” “벌써 현대차 길들이기인가?” 하청업체를 ‘마른 수건 쥐어짜듯’ 착취하는 애플을 욕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냉정히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와 협상이 깨진다면 이미 유럽 자동차회사들에서 물먹은 애플의 선택지는 딱 한 곳, 일본뿐이다.

일본은 내연기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이브리드차량까지도 세계를 주름잡았지만, 전기차 시대 들어 아예 존재감이 사라진 상태다.

그런 일본이 10년 전부터 열심히 준비해오던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전고체 배터리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는 부피가 큰 데다 잦은 화재로 문제를 노출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 때문에 전고체 배터리는 전기차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도요타는 이 분야에서 선두주자다.

도요타는 이를 활용한 전기차 생산에 곧 뛰어든다고 한다. 즉 한방에 전고체 배터리 차 시장으로 넘어갈 준비를 해왔던 셈이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의 전고체 배터리 기술은 토요타보다 2~3년 뒤처진 상태다.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도요타와 손을 잡는다는 건 사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다.

지금 현대차의 속내는 무척 복잡할 것이다.

제2의 폭스콘이 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자존심 굽혀 국민감정에 흠집을 내서도 안 되고, 또 애플과 손을 잡은 후의 손익도 따져야 할테니 말이다.

우리의 분노는 잠시 접어두자.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는 현대차의 현명한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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