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2000년 전 바그다드 배터리

김영린 승인 2021.02.13 14:17 의견 0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박물관에 항아리 하나가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점토로 만든 높이 15cm 정도의 ‘작은 항아리’다. 2000년 전 도시의 유적에서 발견된 항아리다.

구시대의 유물인 항아리 따위가 대단할 것은 없었다. 그런 항아리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자들이 자세히 분석한 결과, 이 항아리는 대단한 항아리로 밝혀졌다.

항아리 속에는 철제로 된 가느다란 축(軸)이 있었다. 그 주위에는 납땜을 한 것 같은 얇은 동판이 있었고, 철사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모두 산화(酸化)된 흔적도 있었다.

어떤 학자가 이 흔적을 주시하다가 ‘느낌표’를 떠올렸다. 같은 종류의 산을 항아리에 채운 뒤 작은 전구를 가지고 와서 철사에 연결시켰다. 그랬더니,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한 전구처럼 불이 밝게 들어왔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항아리는 배터리였다. 2000년 전 이라크 사람들이 ‘동판식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그 전지의 용도를 연구했다. 장신구에 금을 도금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당시에도 배터리가 ‘실용화’되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똑같은 원리의 배터리는 18세기에 이탈리아 과학자가 발명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발명’이라고 할 수 없었다. ‘재발견’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배터리를 사용한 증거가 나왔다. 서기 300년쯤에 활약했던 어떤 장군의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 가운데 좁은 띠와 혁대 장식 비슷한 작은 금속이 있었다.

학자들이 그 금속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구리 10%, 마그네슘 5%, 알루미늄 85%로 된 합금이었다.

학자들은 눈을 의심했다.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분석해 보았다. 그래도 결과는 똑같았다. 알루미늄이 분명했다.

알루미늄은 19세기에야 제조될 수 있었다. 그것도 ‘전기분해’를 거쳐야 만들 수 있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이 전기분해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중국에 제련공장이 있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학자들은 그래서 가내공업 형태로 전기분해 기술이 전수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재발견’된 배터리가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다. 한번 쓰고 버리는 ‘1차 전지’가 아니라 충전을 해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라는 게 등장하고 있다.

용도도 다양해져서 전구나 반짝이던 배터리가 노트북과 스마트폰, 전기자동차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골초들을 위해서 전자담배에도 배터리가 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배터리가 ‘돈’이 되면서 소송까지 발생하고 있다. 기술을 빼내갔다는 것이다. LG와 SK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배터리는 ‘재발견’이 아닌 ‘발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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