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부잣집 흙 도둑질하는 날

김영린 승인 2021.02.25 05:40 의견 0
사진=픽사베이


우리는 흙을 약으로 사용했다.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벽에서 긁어낸 흙을 ‘동벽토(東劈土)’라고 했다. 이 흙은 치질과 유행성 열병을 치료하는 데 쓰였다. 동벽토 중에서도 몇 년 동안 연기에 그을린 것을 가장 으뜸으로 쳤다.

‘호황토(好黃土)’는 지표에서 깊이 3자(尺) 이내에 있는 ‘진토(眞土)’였다. 맛이 달고, 독이 없다고 했다. 설사, 이질, 위의 열독(熱毒) 등으로 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을 낫게 해준다는 흙이었다.

우물 밑바닥에 있는 진흙은 ‘정진사(井辰沙)’라고 했다. 이 흙은 성질이 차서 끓는 물이나 불에 덴 화상에 잘 들었다. 독충에게 쏘였거나, 악몽을 꾸고 가위눌린 병도 다스렸다.

가마솥 밑에 있는 황토는 ‘복룡간(伏龍肝)’이었다. 맛이 맵고 짠데 코피, 토혈, 대하, 혈변, 혈뇨 등에 좋으며 지혈효과도 있었다.

흙은 음식이기도 했다.

중국 사람들은 식량이 떨어지면 흙을 먹으며 배고픔을 견디기도 했다. 그 흙을 ‘관음토(觀音土)’, ‘관음보살의 흙’이라고 했다. 배고픔을 참도록 도와주는 ‘자비로운 흙’이었다.

그렇지만 흙은 소화를 시킬 재간이 없다. 많이 먹으면 몸이 부어올라서 결국은 죽는다고 했다.

흙은 우리도 먹었다. 그 방법이 중국보다 한 수 높았다. 그대로 먹기도 했지만 흙으로 국수까지 뽑아서 먹은 것이다.

평양의 잡약산(雜藥山) 기슭에 부드러운 흙이 있다고 했다. 이 흙으로 떡을 빚기도 하고, 국수를 뽑기도 했다. 산 근처를 지나는 역졸이 배가 출출하면 흙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으며 잠깐 쉬기도 했다는 것이다. 색깔이 푸르스름했고, 그 맛은 달지도 쓰지도 않았다고 한다. 감자국수, 칡국수, 메밀국수에 ‘흙국수(土麵)’까지 먹은 우리 ‘국수 문화(?)’였다.

이렇게 용도가 다양해서인지, 우리는 흙을 ‘도둑질’하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 밤에 부잣집이나 벼슬아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마당 흙을 퍼서 자기 집 부엌 아궁이에 칠하면 ‘돈복’이나 ‘벼슬복’이 옮겨 붙는다는 속설 때문에 흙을 훔쳤던 것이다.

그 때문에 부잣집이나 벼슬아치 집에서는 대보름 밤이 되면 건장한 하인에게 몽둥이를 들고 대문 앞에 서서 지키도록 했다. 흙을 도둑맞으면 복도 그만큼 달아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흙을 지킨 게 아니라 복을 지켰던 셈이다.

대보름에는 한양의 ‘종로 네거리 흙’도 도둑질 대상이었다. 사람이 많이 밟고 다니는 네거리 흙을 대문 앞에 뿌리면 돌림병 귀신이나, 잡귀가 침입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나라에서는 그래서 종로 네거리에 포졸을 세워놓고 밤새도록 감시했다고 한다.

흙은 이처럼 쓸모가 많았다. ‘흙=약’, ‘흙=음식’, ‘흙=복’에 ‘흙=백신’이기도 했다. 어쩌면 ‘코로나19’에 유효할지도 모를 흙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흙이 없다. 도둑질할 흙도 따라서 사라졌다. 온통 아스팔트와 보도블록뿐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우리는 대보름 풍속 가운데 하나를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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