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데스노트’와 LH 투기

김영린 승인 2021.04.08 05:40 의견 0
사진=픽사베이


영화로도 제작된 일본 만화 ‘데스노트(Death Note)’는 범죄자의 이름을 노트에 적으면 ‘키라(킬러)’의 심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노트에 이름만 적히면 그대로 ‘심장마비’다. 심지어는 죽는 시간과 장소, 방법까지 조작할 수 있는 ‘무서운 노트’다. 많은 등장인물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가능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데스노트가 통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서는 데스노트가 있다고 해도, 거기에 ‘이름 석 자’를 적어 넣기가 까다로운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많은 범죄자 또는 혐의자의 이름이 대체로 ‘모(某)’이기 때문이다. 또는 ‘A’나 ‘B’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 이름이 난데없이 A, B라는 알파벳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자기 부모를 폭행한 ‘후레자식’의 이름도 대한민국에서는 ‘모’라고 보도되고 있다. 친딸을 성폭행한 있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해도 ‘모’다. 그렇지 않으면 ‘A’나 ‘B’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이 똑같이 ‘모’일 경우도 적지 않다. ‘모’씨가 몰던 차가 ‘모’씨의 차를 들이받았다는 식이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 유경험자가 일으키는 ‘재범’이 많다고 한다. 한 번 성폭행을 저지른 사람은 또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못된 범인의 이름도 ‘모’다.

게다가, 얼굴까지 ‘모’다. 어쩌다 얼굴이 공개되어도 마스크로 거의 덮여 있다. 아마도 인권보호가 첫째, 경각심은 그 다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데스노트는 ‘동명이인’이 있을 경우를 고려, 얼굴과 이름을 모두 알아야 써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져 있으면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번에 ‘세 모녀 살해범’의 신상정보가 공개되었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름’이 자주 공개되고 있다. ‘부동산투기’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도 예외 없이 A, B로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기사의 경우는 “경찰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직원 A씨의 친인척 B씨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직원뿐 아니라 친인척의 이름도 A, B였다. 정식으로 구속이 된다면 이름이 공개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A, B였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짧지 않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사람의 이름도 A였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의 영장이 신청 또는 청구되어도 그 이름은 아마도 ‘모’나 A일 것이다.

부동산투기사범에게는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 했다. ‘전원 구속’이라고도 했다. 그랬는데 초기 단계부터 그 이름은 ‘모’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데스노트를 많이들 비켜가는 게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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