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미래다] 나는 자랑스러운 연세대 대학원생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9-05 15: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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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 양세영(본명, 두엉 탄와잉) 씨. "두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도전하세요"

▲ 양세영 씨는 남편의 적극적 응원을 받으며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했다. <사진=양세영씨 제공>

 

자그마한 체구의 양세영(28) 씨. 본명은 두엉 탄와잉 이다. 베트남 출신이다. 결혼이주민이다. 귀화 한국인이다. 2018년 5월 한국에 왔다. 남편 오동원(48) 씨와 함께였다. 경기도 고양시에 살고 있다.

하노이 국립행정대학교를 졸업했다. 재정을 전공했다. 회계사 자격증도 있다. 모두가 부러워 한 엘리트였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하노이 한국어학원에 다녔다. 한국어 자격증도 땄다. 3급 자격증이었다.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었다. 한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 사람과 직접 대화를 했다. 말문이 트여갔다. 꿈이 있었다. 한국회사에 취직하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월급이 많았다. 근무여건도 좋았다.

꿈이 이뤄졌다. 한국회사에 취직이 됐다. 취직만 된 것이 아니었다. 사랑의 꽃이 피었다. 사내연애였다. 남편 오동원(48) 씨를 만났다. 2017년이었다. 예의 바른 남편의 매력에 빠졌다. 불같은 사랑을 했다. 2018년 3월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같은 해 6월 한국에서도 결혼식을 치렀다. 양가부모의 축하를 받았다. 친오빠도 참석했다.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배 속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한국생활이 시작됐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쉽지는 않았다. 다툼이 잦았다. 결혼이주민의 공통된 문제였다. 문화적 갈등이 심했다. 언어소통도 안 됐다. 오해가 쌓였다. 음식적응도 힘들었다. 매운맛 적응이 어려웠다. 임신초기에 입덧이 심했다. 베트남 음식이 먹고 싶었다. 시어머니가 베트남 요리 냄새를 싫어했다. 남편이 베트남 식당에 데리고 갔다. 베트남에서 먹던 맛이 아니었다. 고국이 그리워 졌다.

▲ 양세영 씨는 한국에서 양가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양세영씨 제공>

 

남편이 사랑으로 감싸줬다. 시어머니와 중재를 시켰다. 오해도 풀렸다.
2018년 첫째 딸. 2020년 둘째 아들이 탄생했다. 1남1녀의 엄마가 됐다. 2020년 귀화시험을 봤다. 귀화하면 법적으로 안정적 생활이 가능하다. 자녀들을 위해 귀화를 서둘렀다. 합격을 했다. 2021년 7월 최종 귀화가 승인됐다. 베트남 이름 두엉 탄와잉과 작별했다. 한국인 양세영으로 다시 태어났다.

육아가 힘들었다. 친구가 알려줬다. 다문화지원센터에 등록하라고. 2020년 고양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등록했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가정보육사를 지원해 줬다. 육아에 큰 도움이 됐다. 비대면 교육도 시켜줬다. 한국어, 한국문화 교육을 받았다. 2021년 5월 토픽(한국어능력 시험) 시험을 봤다. 쉽게 합격했다. 최상급인 6등급을 땄다. 2021년 7월 전국다문화가족 말하기 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한국에 관해 공부하고 싶었다. 남편이 적극 지원했다. 대학원에 가보라고 했다. 2022년 두려움을 안고 연세대학원에 지원했다. 지원과정이 힘들었다. 서류제출이 복잡했다. 모집요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반전형과 외국인 전형이 있었다. 일반전형으로 지원했다. 입학이 까다로운 전형이다. 외국인전형은 여러 특혜가 있다. 양 씨는 이런 특혜를 몰랐다.

입학면접에 나섰다. 면접관이 물었다. “왜 대학원에 진학하려 하냐고.” 자신의 포부를 말했다. “다문화지원센터 강사들을 교육시키고 싶다.”고 했다. 면접관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학구열이 좋다고 칭찬했다. 결혼이민자의 모범이 되라고 격려했다. 양 씨의 당찬 꿈에 박수를 보냈다.

합격이었다. 과의 유일한 결혼이주민 대학원생이 됐다. 남편에게 합격소식을 알렸다. 날아갈 듯 기뻐했다. 부인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모든 걸 뒷바라지 하겠다며 격려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지금도 매월 갚아나가고 있다. 남편은 전혀 신경 쓰지 말라며 응원하고 있다.

▲ 양세영 씨는 2022년 1학기에 3과목 모두 A+를 받아 주위의 칭송을 받고 있다. <사진=양세영씨 제공>

 

양 씨의 대학원 생활은 행복의 샘터다. 친구가 많이 생겼다. 교수의 친절한 지도가 이어졌다. 인맥확장의 텃밭이 됐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듯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2022년 1학기 성적이 놀랍다. 전 과목 A+이었다. 교수들도 놀랬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축하해 줬다.

양 씨는 대학원생이 된 계기를 결기 있는 모습으로 말한다.
“저는 한국생활을 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언어와 문화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 깊이 알아보려고 한국학 전공을 선택했어요. 실제로 이주민이 한국사회 적응에 어려움이 많거든요. 저는 학위를 딴 뒤 이주민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이주민 교육 강사를 교육시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지금 다문화지원센터에서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강의하면서 느끼는 게 한국에 관해 모르는 게 많아요. 그래서 한국에 관해 배운 거를 다른 강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겁니다.”

양 씨는 자신의 포부와 함께 또 다른 이주민 대학원생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대학원 입학이 어렵다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학부성적이 안 좋아도 대학원 입학이 가능하다고 충고한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입학이 가능하다고 일러준다. 이주민이 많이 배워야 다문화가정의 울타리가 된다고 지적한다.

양 씨의 지적에는 도전과 용기로 버틴 삶이 녹아있는 듯하다. 양 씨는 곧 시작될 2학기 강의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수업자료를 챙기는 손놀림이 바쁘다. 양 씨의 작은 체구가 태산처럼 듬직하게 느껴진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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