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봉환 토요경제 발행인 |
29일 밤 모든 매체는 이태원 압사 참사를 연이어 보도했다. 시청자들은 실제 상황인가 귀를 의심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날 이태원의 좁은 골목 안은 주체할 수 없는 많은 인파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널브러진 주검들과 한 생명이라도 살려보려는 소방관의 심폐소생술은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건물이 무너진 것도,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이날 황망하게 어린 청춘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이번 이태원 압사 사고는 1970년의 ‘와우아파트 붕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 ‘세월호 침몰’ 등에 이은 또 다른 대형 참사다. 언제나 비극이 있었고 사후약방문 같은 수습대책은 나왔었지만 다시 발생한 비극은 막을 수 없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핼러윈 전날인 주말, 코로나19 거리두리 압박에서 벗어난 우리 청춘들은 3년 만에 열린 행사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노도와 같이 몰려든 10만 인파는 그렇게 이태원을 감쌌다. 대규모 군중이 모였지만 핼로윈 축제를 진두지휘한 주최는 없었다. 사태를 키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또 변질된 핼러윈 축제도 사태를 키웠을 것이다. 실제로 각국 외신은 한국의 핼러윈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에서 핼러윈은 아이들이 사탕을 얻으러가는 날이 아니다”라며 “최근 몇 년 간 20대를 중심으로 코스튬을 차려입고 클럽에 가는 행사로 정착됐다”고 전했다. 클럽 가는 날로 전락한 핼러윈 축제 때문에 이날 우리 청춘은 이태원으로 몰려든 것이다.
사실 핼러윈은 미국의 축제로 고대 켈트족이 새해(11월 1일)에 치르는 사윈(Samhain) 축제에서 유래됐다. 켈트족은 이날 사후 세계 경계가 흐릿해지며 악마나 망령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사자의 혼을 달래고자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내놨다. 망령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분장도 했다. 우리처럼 대규모의 인원이 한데 모여 클럽에 가는 문화는 아니었다.
이번 사고에는 안타까운 점도 있다. 이웃나라 대처방법과 우리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6년부터 공연·행사장 안전매뉴얼 등을 만들어 체계적인 안전관리와 예방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안전규정도 주최 측이 명확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지자체나 경찰, 소방당국이 관련 행사규모와 참여 예상인원을 파악하기 힘들어 안전대책조차 세우기 힘든 사정이다.
반면 일본과 홍콩 등 이웃나라는 이미 우리와 달리 핼러윈 기간 강력한 사고 예방대책을 마련해 위험을 감소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도쿄의 번화가인 시부야구에서는 핼러윈 기간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후 5시까지 노상 음주를 금지하는 등 강력한 공권력이 행사를 간접적으로 지휘하고 있다. 매년 핼러윈 시기에 많은 사건과 사고를 경험했던 만큼 이를 예방하기 위해 조례까지 만들었다.
홍콩도 다르지 않다. 핼러윈 기간 아예 특별 안전대책을 만들어 강력한 공권력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 홍콩에선 할로윈 기간 중심가인 란콰이퐁 지역에선 불법 주차된 차량이 강제 견인될 수 있드며 일부 도로는 폐쇄될 수도 있다. 공권력으로 강력한 군중 통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경찰관계자는 “운전자나 여가 목적으로 란콰이퐁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현장 경찰관의 지시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런 홍콩 행정당국의 강력한 조치도 사실 뼈아픈 반성에서 시작됐다. 그들은 1993년 새해 전야제에 발생한 압사 사고로 21명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렇다고 이번 비극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나 경찰 등에 전가해선 안 될 것이다. 행사의 주최가 없었으니 누군가의 희생량으로 그들을 매도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다만 우리도 이참에 머리를 맞대고 일본이나 홍콩 같은 강력한 공권력의 통제방식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모쪼록 사고 수습에 안간힘을 쏟고 있을 행정당국에 비난보다는 힘을 보태주길 기대한다.
토요경제 / 조봉환 기자 ceo@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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