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대한민국] 금녀의 벽 뚫은 도금업 '외길 30년' 양미애 대표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6-10 16: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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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 인터뷰| "3D업종이라 모두 기피, 희소성 높아질 듯"

▲ 9일 양미애 대표가 직원과 제품 생산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사진= 김병윤 기자>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엄마는 강하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모성애의 힘이다. 모성애는 가장 고귀한 사랑이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갖추고 있다. 어떤 고난도 이겨낼 힘이 있다. 그래서 여성은 위대하다. 현대사회는 여성의 진출이 보편화 됐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출해 있다. 최고 경영자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남녀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여성의 유리벽이 점차 깨지고 있다.

모성애의 힘으로 회사를 일궈 가는 여성 사업가가 있다. 인천시 가좌동에서 도금공장을 운영하는 양미애(56) 대표이다. 도금은 가전제품 반도체 자동차 등 대부분 제조과정에 필수요건이다.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 노하우가 필요한 업종이다. 양 대표는 27년째 도금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일찌감치 남자의 영역에 도전했다. 주위에서 신기한 눈으로 바라 봤다. 개의치 않았다. 엄마의 정신으로 도전했다.

양 대표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1991년 도금공장에 관리직으로 입사했다. 25세 어린 나이였다. 6년간 근무했다. 관리직에 있으며 깨달았다. 원가대비 이익이 막대하다는 거를. 직접 공장을 차리고 싶었다. 곁눈질로 생산과정을 익혔다.

1997년 창업했다. 설립자금 2억5천만 원을 끌어 모았다. 지금의 가좌동에 자리 잡았다. 직원 5명의 소규모 회사였다. 운이 좋았다. IMF가 터졌다. 도산하는 기업이 많이 생겼다. 비싼 기계가 싸게 나왔다. 8억 짜리 기계를 1억도 안 되게 사들였다.

초창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생산을 위해 현장에서 살았다. 영업을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경리업무는 주말에 정리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회사를 운영했다. 1인3역의 고달픈 시간이었다. 

 

경험이 없어 돈을 여러 번 떼었다. 수업료를 낸 거라 생각하며 쓰린 가슴을 달랬다. 그래도 보람이 있었다. 거래처가 많아졌다.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었다. 공장을 쉼 없이 돌렸다. 야간 작업은 기본이었다. 직원도 새로 뽑았다. 직원이 26명까지 늘었다. 회사의 매출이 쑥쑥 올랐다.

이런 호황도 어느 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발생했다. 주문이 줄어들었다. 코로나 발생 전에 비해 매출이 60%로 줄었다.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 휴일근무를 줄였다. 생산 자동설비로 인력 감축에 나섰다.

제조업은 최저임금 상승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인력은 구하기 어렵다. 도금공장은 1차 산업이다. 3D 산업의 표본이다. 국내 근로자들이 외면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다. 현재 17명의 직원 중 10명이 외국인이다. 이들의 임금도 매우 높다. 평균 월급이 350만 원이다. 최저임금 상승의 결과물이다. 숙식 제공은 의무사항이다. 기업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도금산업은 환경규제가 심하다. 화학약품을 사용해서다. 친환경 생산을 해야만 한다. 환경관리 직원이 필요했다. 양 대표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또 다른 도전이었다. 본인이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회사운영에 필요한 자격증은 다 따냈다. 주경야독의 자세였다.

양 대표는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원자재 값 폭등이다. 도금공장에서는 구리를 많이 사용한다. 중국에서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격이 2배 이상 뛰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앞으로도 원자재 가격상승이 이어질 전망이다. 가격상승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공급이 중단될까 걱정이다. 현재의 자원전쟁 상황을 보면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양 대표는 코로나 발생 전에 꿈이 많았다. 사업 확장 계획도 세웠었다. 이제는 경영방침을 바꾸었다. 확장보다는 현상유지에 힘쓰기로 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직접 납품할 방법도 찾고 있다. 그동안 쌓은 인맥을 활용할 계획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양 대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도금산업 전망이 밝다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도금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합니다. 주문이 많을 때는 다른 공장에 외주를 줘야 할 형편이에요. 도금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이 도금산업을 기피하고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도금산업의 희소성은 높아질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도금산업에 매진할 겁니다.”

▲ 양미애 대표 <사진= 김병윤 기자>

 

기업가는 어려움 속에서 길을 찾는다. 양 대표는 30년 외길을 걸어왔다. 수많은 고통과 갈등 속에 성장해 왔다. 금녀의 벽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1차 산업 3D 직종에서 희망을 찾는 양 대표의 혜안이 빛나길 바란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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