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대한민국] 여자프로당구 선수에서 여행사 대표로 세상에 서다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5-11 18: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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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 인터뷰| 정보라 "프로당구대회에서도 꼭 우승해야죠"
▲ 여행사 대표와 프로당구 선수 1인 2역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보라 대표 겸 선수  

 

딱. 따닥. 조용한 실내에 파열음이 들린다. 당구공 부딪치는 소리다. 사람들의 탄성이 터진다. 신기에 가까운 묘기가 선보인다. 예술 같은 입맞춤에 박수가 터진다. 연인들의 입맞춤이 아니다. 당구공의 만남이다.  
 

당구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프로당구 선수도 많다. 남자는 천여 명이 넘는다. 당구는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자 프로당구 선수도 128명에 이른다. 정보라(39) 선수도 여자 프로당구대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15살에 취미로 당구를 쳤다. 당구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영향이 컸다. 본인도 운동을 좋아해 스스럼없이 당구에 빠졌다. 19살 때부터 선수로 활약했다. 올해로 당구경력 20년 차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돈을 벌고 싶었다. 선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 포켓볼 선수로 출발했다. 직장생활보다 선수가 돈을 빨리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과정이 힘들었다. 레슨비, 외국대회 출전비를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2002년 전국아마추어대회에 출전했다. 첫 출전에서 우승을 했다. TV에 출연했다. 연예 프로에도 나갔다.  
 

2006년 미국으로 진출했다.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험이었다. 2년간 체류했다. 일 하면서 당구대회에 출전했다. 소규모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우승 상금이 몇 천불에 머물렀다. 생활하기에도 빠듯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따랐다. 투어 출전은 못했다. 지역이 넓어 비행기로 이동해야 했다. 뉴욕 근처 작은 시합에만 출전했다.
 

2008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내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부산시체육회와 계약을 맺었다. 월급이 나왔다. 생활이 안정됐다 .대회에 출전해 성적이 좋으면 포상금도 받았다. 포상금은 부모님 치료비로 썼다. 아버지가 당뇨로 투병 중이었다. 투석을 10년째 하고 있었다.
 

2016년에서 2020년까지 공백기가 생겼다. 2016년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곧이어 어머니도 별세했다. 부모님을 순식간에 잃었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남독녀 외딸이라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귀찮았다. 무기력증에 빠졌다. 삶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잠시 방황했다.
 

정신을 차렸다. 혼자 일어나야 했다. 독립심과 투쟁력으로 험한 세상과 맞섰다. 아버지 별세 후 제주도 여행사에 취직했다. 어머니 지인이 도움을 줬다. 밑바닥부터 배웠다. 손님 안내를 했다. 친절함을 익히기 위해서다. 운전도 직접 했다. 
 

2018년 여행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8월에 사업자 등록을 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사무실을 열었다. 베트남 여행사와 공동사업을 했다. 베트남 관광객을 유치했다. 전세기를 계약했다. 2019년까지 1년 동안 전세기 60대를 띄웠다. 예상 밖의 호황이었다. 시기도 맞아 떨어 졌다. 사드사태로 중국 관광객이 오지를 않았다. 틈새시장을 베트남 관광객이 채웠다. 국내여행사 중 베트남 관광객 유치 상위권에 올랐다. 앞길이 찬란할 것처럼 보였다.
 

반전이 일어났다. 호사다마(好事多磨)랄까. 2020년 코로나가 발생했다. 하늘길이 막혔다. 모든 업무가 중단 됐다. 수입이 끊겼다. 돌파구가 없었다. 앞길이 막막했다. 일단 벌어놓은 돈을 투자했다. 2년간 돌려막기로 사무실을 운영했다. 직원도 없는 외로운 싸움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때마침 프로당구가 출범했다. 2021년 프로당구대회에 첫 출전했다. 1년간 계속되는 장기대회다. 첫 대회 최종 32인에 올랐다. 대회기간 중 16강에도 진출했다. 우승은 못 했지만 만족할 성적이었다. 훈련부족을 실감했다.  
 

대회기간 중 당구아카데미 교실도 운영했다. 당구대 6개를 설치했다. 수강생이 많았다. 나름대로 안정을 찾을 때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다. 집합금지를 3번이나 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2022년 4월에 당구아카데미 교실을 폐쇄했다. 당구대 한 개만 남겨 놓았다. 본인의 훈련을 위해서다.  
 

고난의 세월을 보낸 정 대표에게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2022년에 하늘길이 서서히 열렸다. 여행객도 많이 늘었다. 베트남 현지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전세기 사업을 다시 하자고. 정 대표는 흔쾌히 받아 들였다. 전세기를 계약했다. 베트남 나트랑 근처의 달랏으로 가는 비행기다.  이미 계약금도 지불했다. 7월27일 첫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모두 12번을 운항하게 된다. 

 

정 대표의 꿈은 더욱 야무지다. 올 추석 때는 하와이 LA 하노이 발리에 전세기를 띄울 계획이다. 항공사들과는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계획은 해외여행 고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승산이 있다고 자신한다.  
 

정 대표는 2022년에 60~80대의 전세기 운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당구에서도 못 이룬 꿈을 달성하고자 한다. 프로당구대회에서 꼭 우승을 이루고 싶어 한다. 아버지의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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