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안보인다고 문제가 문제가 아닌 건 아니다

김경탁 / 기사승인 : 2021-09-17 14: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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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김경탁 기자] 몇 년 전, 50대 초반 나이의 직장동료와 대화를 나누다 그가 10년째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다.


왜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암 진단이 나올 것 같아서 무섭다”는 소리였다.


물론 어떤 암들은 몸 안에 발생한지도 모르게 완치되고 지나갔다가 나중에 흔적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 있고, 특히 갑상샘암 같은 경우 진단기술의 발달로 진단율이 올라갔음에도 사망률에 변화가 없어서 조기진단보다 과잉진료가 더 문제라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암이라는게 늦게 발견할수록 예후가 안좋아지는 병인데다, 조기에 발견하면 거의 대부분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 된 시대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항암치료에 워낙 돈이 많이 들어서 암을 이기려면 집에 자본력이 뒷받침되어야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이제는 ‘문재인케어’ 덕분에 대부분 큰돈 걱정 없이 암과 싸울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또 며칠 전에는 이메일을 훑어보다 보도자료 제목을 보고 놀란 일도 있다.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실에서 보낸 그 보도자료의 제목은 ‘산재 줄인다더니…文정부 들어 발생 건수 2배 증가’였다.


“대규모 공사 수주 건설사로 꼽히는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의 원·하청업체에서 최근 4년간 산업재해 발생 건수가 2배나 증가하고 산재 사망자 수도 감소세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보도자료를 의원실에서 하루 미리 받았는지, 그 전날 제목에 [단독] 표시를 달고 기사를 낸 매체도 있었는데, 기사에 대한 정부 측 반박을 들어보면 ‘산재’가 늘어났다는 것은 통계에 의한 착시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산재 감축’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 산재 은폐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고려해, ‘산재사망사고 감축’을 목표로 정책을 수립·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은폐를 줄이고 근로자가 적극적으로 보상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평균 근로시간, 노출수준·기간 등 일정한 기준을 충족할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토록 했고(`17.9월), 산재 신청시 사업주 날인제도가 폐지됐으며(`18.1월), 공공발주 공사 입찰(PQ, 종합심사낙찰제 등)에 영향을 미치는 건설업체 재해율을 환산재해율에서 사고사망만인율로 변경(`18.12월)했다.


고용노동부는 “제도개선 등의 결과로 산재 신청·승인 건수가 지속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산재사망사고 절반 감축을 추진 중이며, 사고사망자는 `16년 969명 대비 `20년 882명, 사망사고 만인율도 `16년 0.53에서 `20년 0.46으로 감소추세”라고 밝혔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특정 현상들은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게 문제라고 인식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인식하지 않는다고,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당장, 옆나라 일본에서는 통계상에 나타나는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아보려고 하루 검사자 숫자를 제한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었고, 그 결과 올림픽 기간이었던 8월에 ‘의료붕괴’에 가까운 상황을 맞닥뜨린 바 있지 않은가.


다른 예를 들어, 경찰청 범죄통계에서 성범죄 관련 항목을 보자.


통계 자료는 2010년과 2011년을 기점으로 전후가 분리되어 제공되고 있다.


2010년 이전까지 통계에 ‘강간’ 항목이 중간분류로 있고 그 안에 강제추행 등이 포함돼있었는데, 2011년에 ‘강제추행’이 강간과 같은 중간분류로 추가됐고, 2013년부터는 ‘유사강간’과 ‘기타 강간·강제추행’ 등이라는 항목이 더해졌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1991년 연간 발생건수가 3669건에 불과하던 강간 건수가 2010년 1만8220건으로 폭증했고, 2012년에는 강간·강제추행이 1만9670건까지 늘어났다는 부분이다.


통계청 범죄발생 및 검거현황 (전국)(1990~2010) 일부 캡쳐
통계청 범죄발생 및 검거현황 (전국)(1990~2010) 일부 캡쳐

통계항목이 세부적으로 분리된 2013년 이후를 보면, 강간은 연간 5000여건 초반에서 중후반대까지 오르락 내리면서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데, 강제추행의 경우 2020년에만 전년대비 대폭 꺾였을 뿐 2019년까지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왔다.


지표를 1차원적으로 해석하면, 대한민국은 1991년 이후 점점 더 성범죄가 들끓는 나라로 퇴행하다가 2012년에 최악으로 치달아 강간의 왕국이 됐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팩트가 드러내지 못하는 ‘진실’은 다르다.


이전까지 자신의 피해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던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신고를 할 수 있게 세상이 바뀐 것이다. 피해자를 오히려 손가락질하는 것이 ‘2차 가해’이고, 부도덕하며 부끄러운 일이라는 공감대가 점차 확산돼온 것이다.


‘과거보다 나은 세상’은 어둡고 아픈 상처를 묻어두지 않고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공론화함으로써만 만들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기는 귀찮은데 보기도 싫다면서 신문지로 덮어두고 방치하면 구더기가 득실대고 쥐나 바퀴벌레가 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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