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이 이끄는 그룹들도 잦은 경영권 분쟁으로 조각조각 나기 십상이다. 형제들간 경영권 다툼이 생기면 계열사간 거래도 일절 끊기곤 한다.
LG는 특이한 케이스다. 구씨 허씨 두 가문이 57년간 화합 속에 아름다운 동행을 했다. 사소한 불협화음 없이 동업을 이어온 연구대상이다.
두 가문은 지난 2005년 LG와 GS로 계열분리를 했다. 그러나 계열분리후에도 여전히 공동사업을 진행하는 등 동업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과 아름다운 이별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 구·허씨 동업의 역사
LG의 구씨·허씨 양가의 동업은 1947년 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창립과 함께 시작됐다.
지연과 혈연을 맺었던 두 가문은 허정만 씨가 구인회 회장에게 셋째 아들인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경영수업과 출자를 제의하면서 본격적인 동업을 시작했다.
허정만씨는 구인회 창업주의 장인인 허만식씨와 6촌지간으로 사돈가문의 사업가 구인회씨를 눈여겨 보던 참이었다. 구인회 회장은 허정만씨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허준구씨를 영업담당 이사에 배치했다. 구씨·허씨 양가가 LG그룹의 기초를 다진 계기다.
이후 허준구 회장의 형제들인 허학구씨와 허신구씨 등도 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양가는 사소한 불협화음 하나 없이 57년간 동업관계를 유지하며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 역할분담의 미학
"경영은 구씨 집안이 알아서 잘할테니 돕는 일에만 충실하라." 구인회 회장에게 자본을 투자한 허정만씨는 훗날 자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선대의 이같은 뜻은 대대로 이어졌다.
아들세대인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과 구자경 LG명예회장은 50년을 한 직장에서 부대낀 둘도 없는 동지요 친구였지만 회사에서 허 회장은 구 회장에게 더없이 깍듯했다.
나이는 허 회장이 두살위고 LG에 몸담은 것도 4년 먼저였지만 한발짝도 구 회장 앞에 나서는 법이 없었다.
구본무 LG회장에 대한 허창수 GS홀딩스 회장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허 회장도 구회장이 참석하는 그룹행사는 국내외 산업현장 방문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면서 구회장을 돋보이게 했다.
구회장 역시 허회장을 예우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중요 사항은 항상 허회장과 함께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구씨 가문은 대개 사업확장, 공장건설 등 바깥일을 담당했고, 숫자에 밝은 허씨 가문은 재무, 영업 등 안살림에 주력하는 역할분담의 미학을 지켰다.
양가의 인화는 창업 1, 2대를 거쳐 3대로 내려오면서도 변함없이 LG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지난 1995년 2월 구본무 LG회장의 취임당시 창업세대들은 일시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구자경 회장을 비롯해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LG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났다.
젊은 경영자들의 활동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구자경 회장의 뜻에 양가의 창업세대들이 동반퇴진을 한 것이다. 차세대 경영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양가의 창업세대가 뜻을 같이 해 동반 퇴진했던 일은 재계와 사회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 57년간의 성공적인 동업 비결
양가의 동업이 성공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양가가 서로를 예우하며 합리적인 원칙에 바탕을 둔 인화를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다. 사전에 충분한 합의를 거쳐 원칙을 정하고, 정해진 원칙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 왔기 때문이다.
유교적 가풍이란 분석도 있다. 엄격한 위계질서로 연하의 삼촌이 머리가 희끗한 연상의 조카에게 '자네'라고 부르는게 어색하지 않다. 자손이 많은 양가의 동생과 조카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배경은 유교적 가풍 덕이다.
구씨 허씨 양가는 주요주주간 사업분할에 따른 책임경영체제 강화를 위해 계열분리를 결심했다. 지난 2005년 양가의 합의 과정에 따라 LG와 GS로 그룹이 분리됐다.
계열분리후에도 LG그룹과 GS그룹은 필요에 따라 공동 사업을 진행하면서 동업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은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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