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 아파트의 집값이 떨어짐에 따라 소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면서 재건축ㆍ재개발 시장에도 다운사이징(downsizing) 바람이 불고 있다. 이는 어떻게든 큰 집을 지으려 했던 기존 재건축ㆍ재개발 사업의 모습과는 정반대 양상이다.
과거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소형 아파트를 배정받는 조합원이 많았지만 현재는 스스로 소형 평형 아파트를 원하는 수요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대형 아파트에 비해 되팔기가 쉽고 가격 상승이 기대되는 소형 아파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재건축ㆍ재개발 시장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권에서조차 대형 아파트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소형 아파트로 계획을 변경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 강남권 아파트도 ‘면적 줄이기’ 돌입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호1차아파트 조합은 전 가구의 기존 아파트 전용면적을 20~30% 줄인 재건축 변경 안을 지난 8월 15일 통과시켰다. 당초 계획안에 따르면 총 800가구가 지어지지만 바뀐 계획안을 적용할 경우 907가구로 늘어난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는 전용면적 85㎡(약 25.7평) 이하 중소형 면적이 64% 가량을 차지한다.
최근 재건축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강남구 도곡동 삼익아파트도 재건축안을 다시 만들고 있다. 전용면적 141㎡(약 42.7평)형에 사는 주민 60여명이 재건축 이후 입주할 집을 줄이는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업승인을 받고 이주 중인 강동구 고덕동 고덕시영 재건축단지도 대형 아파트 대신 소형을 분양받기를 원하는 조합원들이 생기면서 설계 변경을 했다. 서울시 건축위원회는 지난 5월 종전 85㎡ 초과 대형을 기본안보다 597가구 줄이는 대신 85㎡ 이하 중소형 가구를 992가구 늘리는 ‘고덕시영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계획 변경안’을 승인했다.
재건축단지뿐 아니라 재개발 구역에서도 소형 선호현상이 드러난다. 지난 4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서울 성동구 옥수13주택재개발구역에서는 조합원들이 한창 이주 중이다. 그런데 조합은 관리처분인가를 다시 받을 계획이다. 85㎡ 이하 중소형 아파트를 기존 1763가구에서 1896가구로 늘리고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는 134가구에서 97가구로 줄이기 위해서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1구역에서는 조합원 80% 이상이 59ㆍ84㎡형 등 중소형 평형을 선택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3구역 역시 조합원 2338명 중 93%인 2180명이 중소형을 희망했다.
◇ ‘작은 집’ 선호, 왜?
조합원들이 소형을 선호하는 이유는 소형 평형 선택시 추가분담금을 줄일 수 있고 환금성이 높기 때문이다. 종전보다 평면 설계가 좋아져 소형 평형으로도 중대형 평형 못지않은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조합원이 가져가는 면적이 줄면 일반 공급 물량이 늘어나고 조합원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분담금은 줄어든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시 지을 수 있는 최대 바닥 면적의 합계는 법정(용적률)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추가분담금은 신축아파트의 조합원 분양가에서 조합원 지분 가격을 뺀 것으로 앞으로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공사비다. 아파트 일반분양은 재건축ㆍ재개발 조합 관점에서는 수익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분양이 적거나 건축 시공 원가가 올라간다면 새 아파트를 건설 시 들어가는 공사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재건축 사업에 비해 조합원 평가액이 낮은 재개발의 경우 가격 하락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재개발은 주거환경이 불량한 단독주택 밀집 지역을 개발해 새 아파트촌으로 만드는 사업이다. 따라서 조합원 지분평가액이 재건축 사업보다 낮고 추가분담금은 높은 구조를 형성한다. 최근 재개발 사업이 시들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평면 설계기술이 좋아진 것도 ‘작은 새 아파트’의 인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요즘 짓는 소형 아파트들은 종전 설계와 견주어볼 때 면적에 비해 공간 활용도가 높다. 발코니 확장 공사를 통해 사용면적을 늘릴 수 있고 빌트인가구 등이 기본으로 설치돼 있어 공간 활용이 용이하다. 면적이 약간 작아져도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면적 줄이기, 앞으로도 계속될 듯
재건축ㆍ재개발 사업에서 다운사이징 열풍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지역에서 주택은 면적이 커질수록 찬밥 신세다. 서울 기준으로 올 초부터 6월까지 전용면적 60㎡(약 18.2평) 이하 가격은 2.19%, 60~85㎡는 2.82%, 85㎡(약 25.7평) 초과는 3.55% 하락했다. 면적이 커질수록 하락률이 커졌다는 의미다. 85㎡ 초과 중대형은 2010년 3월 이후 줄곧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래량으로 따져 봐도 비슷한 모양새다. 올 6월 기준으로 전용면적 85㎡ 초과 대형 아파트 거래량은 708건으로 2006년 실거래가격을 조사한 이래 최저점을 기록했다. 반면 60㎡ 이하 소형 아파트 거래량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2010년보다는 오히려 늘었다.
가격 상황과 거래량을 종합해 볼 때 소형 아파트는 가격을 낮추면 거래가 쉽게 이뤄지는 반면 대형 아파트는 가격을 낮춰 팔려고 해도 쉽게 팔리지 않는 상황이다.
분양시점에서 한꺼번에 많은 물량을 팔아야 하는 분양 시장에서는 면적별 선호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요즘은 소형 면적보다 대형 분양가가 오히려 낮게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중대형 미분양 재고가 많다는 사실은 당분간 소형 아파트 선호 추세가 지속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건설사들도 소형 평형 공급에 주력하고 있다. 굳이 중대형 아파트를 많이 지어서 조합이나 시공사가 위험을 떠맡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건설회사 관계자는 “인천 지역 재개발 수주 사업장 중 대형 아파트 공급계획을 전부 변경해 소형으로 재구성한다는 방침을 회사 차원에서 세웠다”고 밝히며 “앞으로 수도권에서 소형 아파트 공급이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인 가구가 늘고 핵가족화가 심해져 아파트 뿐 아니라 주택시장 전반에서 ‘작은 집’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형 아파트만 계속해서 들어설 경우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중대형 아파트가 다시 조명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20년 경력의 한 공인중개사는 “실제로 경기도 분당ㆍ일산 등 1기 신도시가 입주를 시작한 2000년대 초반, 미분양 아파트는 중대형보다 중소형이 훨씬 많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한쪽으로 치우친 정책이나 공급은 부동산 시장 침체와 거품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 국토만 균형 발전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면적별로 편중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균형 발전 정책이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굳이 집값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재건축ㆍ재개발 조합원 지분보다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나오는 일반분양 아파트 청약을 고려해 보는 것이 좋다. 공급이 많아지는 전용 85㎡ 이하보다는 90㎡ 내외의 물량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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