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돼 본격적인 대권가도를 걷게 된 박근혜 후보.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등, ‘대통합’ 행보에 나섰다.
박 후보가 통합해야 할 대상은 야권만이 아니다. 여권 내 비박(非朴) 인사들과 통합해 힘을 더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과제다. 이 중에서도 특히 비박 중진인 이재오 의원ㆍ정몽준 전 대표와의 화해가 이루어질지가 정계의 관심사다.
그러나 이 의원과 정 전 대표는 박 후보에 대한 ‘까칠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 박 후보의 ‘끌어안기’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 朴 ‘비박 끌어안기’ 가속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김문수 경기지사, 김태호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등 경선에 참여한 비박계 후보 4인과 회동을 가졌다.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 경선에서 경쟁했던 네 명의 후보를 초청해 24일 여의도에서 오찬을 가졌다”며 “네 분의 후보도 흔쾌히 수락했다”고 전했다.
앞서 박 후보는 지난 20일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 뒤 이승만ㆍ박정희ㆍ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광폭행보를 보여 왔다. 대선후보 수락 연설문에서 밝힌 대통합의 실천을 위한 행보로 이번 비박계 후보들과의 회동도 그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홍 대변인은 회동에 대해 “박 후보는 경선 소회를 나누고 대선의 협조도 구했다”고 밝혔다.
박 후보의 한 측근도 “경선 과정에서 반드시 대선승리를 이루겠다며 네 명이 박 후보와 같이 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며 “경선은 이미 지난 일인 만큼 이제는 앞으로, 미래로 가면서 대선승리를 위한 의지를 서로 다지는 일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박 후보와 비박계 주자들이 5ㆍ16 역사인식, 공천헌금 의혹 등을 놓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지만 이제는 연말 대선승리를 위해 당을 하나로 만들려는 움직임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갈등으로 끝내 경선에 불참을 선언한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과는 이들의 일정상 이유로 아직 회동을 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박 후보 측은 이 의원과 정 전 대표와의 회동도 구상중이다. 당 안팎에서는 “치열한 연말대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 의원ㆍ정 전 대표 등 비박 인사들에 대해 “새누리당이 집권하기 위해선 장관이나 당 대표를 맡은 인재들이 필요하다”며 “당연히 모시고 가 대선승리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도 “우리가 정당을 만들어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은 국민이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한 대의에 따른 것”이라며 “대의를 위한 생각을 공유한다면 얼마든지 같이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재오 일갈 “찾아간다고 통합되나?”
하지만 경선 룰 갈등으로 생긴 감정의 골이 깊어 실제로 회동이 성사될지 여부는 아직까지 장담키 어렵다.
이 의원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우크라이나에 방문했다가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 합류여부와 관련해 “좀 더 지켜보고 상황을 파악한 뒤 결정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방문을 위해 출국한 탓에 당 대선후보가 확정된 8ㆍ20 전당대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의원은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 앞서 정몽준 전 대표 및 김문수 경기지사 등과 함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 도입 문제를 놓고 박 후보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이 의원은 전당대회 결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제가 출장을 장기간 가 있어 상황을 모르니까 지켜보고 제 입장을 이야기하겠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삼갔다.
박 후보가 4년 중임제 개헌론에 찬성의사를 밝힌데 대해서는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이 나라를 위한 길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안심을 줄 수 있는가를 여러가지로 생각해서 기회가 오면 종합적으로 밝히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도, 당내 민주화도 중요하다”며 “당내 민주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지켜보겠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그러던 이 의원이 30일 박근혜 대선후보의 대통합 행보를 겨냥해 “내가 찾아가고 손 내밀면 화해와 통합이 될 것이란 생각은 지극히 오만한 독재적 발상”이라며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과 역사인식을 갖고 다른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이 선거를 눈앞에 두고 화해ㆍ통합 등을 들먹이며 돌아다니려면 먼저 무엇이 다른지(를 인식하고) 그 거리를 좁히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뜻의 ‘근자열(近者悅) 원자래(遠者來)’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구하는 일은 자기를 버리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28일 박 후보의 전태일 재단 방문이 유족들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반발로 무산된 것은 물론 비박 중진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화해 손길을 뻗는 등 대통합 행보에 진정성이 결여된 점을 비판한 것이다.
이 의원은 29일에도 “헌법 119조의 정신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이지 일방적인 경제민주화가 아니다”면서 “선거를 앞두고 대중 인기에 영합해 헌법 정신을 왜곡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 전체를 불행하게 한다”고 박 후보 측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비판했다.

◇ 정몽준 “박근혜의 유신 인식 실망”
정몽준 전 대표도 ‘박근혜 선대위’ 참여 여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 전 대표는 ‘박근혜 대선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협조를 요청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당원이자 전직 당 대표로서 제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선대위 참여 가능성에 대해서는 “캠프에는 좋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는 말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민대통합을 내세운 박근혜 후보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는 “찢어진 청바지도 입겠다고 하던데 박 후보가 아주 잘하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후보와 비박 경선주자들이 대선 승리를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는 소식에 대해 “경선에 참여한 분들로서는 당연히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며 “그런 소식이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던 정 전 대표는 30일 박근혜 후보 경선캠프의 홍사덕 전 공동선대위원장의 유신 발언을 겨냥해 “국민을 행복한 돼지로 보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10월 유신이 경제발전을 위한 조치였다는 주장에 크게 실망”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지난 29일 홍 전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조치에 대해 “우리나라가 와이셔츠와 가발을 만들고 쥐와 다람쥐까지 잡아 팔아 수출 10억달러를 달성했지만 100억달러는 중화학공업 육성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신을 한 게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해 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박 후보의 역사인식 논란에 대해서는 “자기 아버지를 욕하면 대통령 시켜주겠다는 건데 내가 후보라면 절대 무릎 꿇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전 대표는 “유신의 논리란 먹고 사는 것은 권력이 해결해 줄 테니 정치는 필요 없다는 것”이라며 "유신과 동시에 북한도 주체사상과 주석제를 명기한 헌법을 만들었는데 이것도 잘했다고 해야하는지…“라고 꼬집었다.
◇ 朴의 ‘끌어안기’ 어려운 이유는…
박 후보가 당내 화합을 위한 손길을 내밀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중진의 공세가 계속되는 것에 대해 정계에서는 “이런 비판을 단순히 일회성으로 치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경우에 따라 역사인식 등 과거사 문제를 고리로 박 후보와 비박 진영 간 갈등의 불씨가 다시 지펴질 수도 있다.
박 후보 측이 두 사람을 끌어안고 가겠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양 측의 회동이 이른 시일 내 성사될지도 미지수다. 최근 박 후보 측은 두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일정 조율까지 했지만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 측 한 인사는 “같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 회복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두 의원의 ‘까칠한’ 태도를 놓고 당내에선 “박 후보를 돕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두 의원 측은 “후보 흔들기가 아니라 정권 재창출을 위한 충고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의 측근은 “이 의원은 이미 정권 재창출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며 “박 후보가 이를 자신을 위한 충고로 받아들인다면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 전 대표의 측근도 “정 전 대표는 전직 대표로서 당원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이미 밝혔다”며 “박 후보가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할 것이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 관계의 매듭을 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정계에서 나오고 있다. 정 전 대표는 자신이 당 대표일 때 박 후보가 외면했던 기억을, 이 의원은 유신시대 때 고문 당한 악몽을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당 일각에서는 박 후보가 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포용력을 보여야 앙금을 털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에서는 박 후보가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 후보가 굵직한 사안에 오랜 시간 침묵을 지키고 있는 모습과 ‘한마디 툭 던지고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스타일’이 비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 후보가 변화와 통합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그동안 유지해 온 소통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며 “박 후보가 측근보다 먼저 직접 설명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수용하는 등 적극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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