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라면·두부 팔지 마!”

유상석 / 기사승인 : 2012-09-07 09: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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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와 전면전 선포한 서울시, 과연?

“도대체 법을 어떻게 만들어야할 지 모르겠어요.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만들면 대형 유통사들이 허점을 마구 파고들어 편법 영업을 일삼고, 그렇다고 너무 강하게 규제하면 신도시처럼 재래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지역의 주민들이 불편을 겪으니…”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한 의원의 보좌관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푸념이다. 이 보좌관의 말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사업 영역 확대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대형 유통업체들과 이들을 규제해 중소상인을 보호하려는 공권력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은 계속되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앞으로 서울시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 라면ㆍ소주ㆍ담배 등 50개 품목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행정법원이 “대형마트의 ‘월 2회 일요일 강제휴무’ 처분은 적법하지 않으니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거의 유명무실해지자 서울시가 더 강력한 규제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 라면ㆍ두부ㆍ콩나물 등 팔지 말라니…
서울시가 대형마트ㆍSSM에서의 판매 제한을 추진 중인 품목은 소주ㆍ막걸리ㆍ담배ㆍ종량제 봉투ㆍ라면ㆍ건전지ㆍ두부ㆍ콩나물ㆍ전구ㆍ콘 아이스크림 등 50가지다. 치킨ㆍ떡볶이ㆍ순대ㆍ피자 등도 검토됐지만 최종 품목에서는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연초부터 각 자치구로부터 의견을 받아 50개 품목을 정했다. 판매 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고 소비자가 동네상권과 전통시장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품목들이어서 별다른 소비자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형마트와 소비자들은 깜짝 놀라는 분위기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형마트 측에서는 “판매 품목 제한은 소비자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며 소비자 불편만 가중시키는 규제”라고 입을 모았다.


당장 구매에 불편함을 겪게 될 소비자들도 볼멘 표정이다. 맞벌이를 한다는 직장인 김문갑(30) 씨는 “나와 아내가 모두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10시가 넘는다. 재래시장의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은 이 시간대에 내일 아침거리라도 사 놓으려면 어쩔 수 없이 대형마트나 SSM을 이용하게 되는데, 두부나 콩나물 같은 기본적인 반찬거리를 못 팔게 하면, 우린 어쩌란 말이냐”고 지적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거주하는 김계두(28) 씨도 “전통시장 살리기, 지역상인 보호… 다 좋은데, 신도시처럼 재래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곳에 사는 주민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김 씨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규제라고는 하지만, 정작 반사이득을 보는 곳은 홈쇼핑과 편의점,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하나로마트 등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실제로 올 초 시작된 대형마트 영업 규제 때도 전통상권보다는 편의점이 반사이익을 얻는 상황이 연출됐다.


반면 중소상인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서울시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나서 중앙 부처에 제품 판매 제한을 제시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며 반겼다.


서울상인연합회도 “담배ㆍ소주ㆍ막걸리 등은 골목상권의 주요 판매 상품이므로, 대형마트는 공산품이나 다른 식음료 판매에 집중하고 서민 품목은 골목상권에 양보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또 “대형마트 휴일 영업 규제가 유명무실해진 만큼 이번 방안이 확실하게 추진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현 어려워
서울시가 이 같은 안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아직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


정부(지식경제부)가 서울시 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서울시 혼자 독자적으로 ‘50개 품목의 대형마트 판매 제한’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다만 조례를 통해 ‘권고’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관련 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소비자의 선택권 등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대형마트 납품 업체의 판로 제약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한편 이번 조치가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판매 제한 품목이 실제로는 대형마트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은 제품들이란 설명이다.


실제 이마트 전체 매출에서 소주, 담배, 막걸리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0.5%, 0.2%, 0.1%에 불과하다. 라면만 비중이 좀 크다. 홈플러스 전체 매출에서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2.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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