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 '양계산업 지킴이'에서 '배신자'로 전락

유상석 / 기사승인 : 2012-09-21 13: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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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가격 폭락 주범" 지목…하림 "오해다"

국내 최대의 닭고기 가공 및 유통업계로 알려진 ‘하림’이 최근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 양계산업 지킴이’를 자처해온 김홍국 하림 회장이 계열사를 통해 닭을 대량으로 수입, 국내 닭 가격을 폭락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중순 무렵, 업계에서는 “하림이 위장 계열사 ‘HK상사’를 내세워 수입 닭을 유통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림 측에서 “올바른 절차를 거쳐 공정위에 신고한 정당한 계열사”라고 해명했지만, “수입육 판매로 물량 과잉을 야기해, 국내 양계농가와 업계를 어려움에 빠트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국내 양계업 어려운데, 수입이라니…”
닭강정ㆍ파닭 등 닭고기를 이용한 먹을거리들이 인기 간식ㆍ야식으로 떠오르면서 닭고기 소비는 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양계농가들은 닭고기 가격 폭락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인기 먹을거리들은 가격이 싼 수입육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내 닭고기 매출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선 “선두 업체인 하림이 닭고기를 몰래 수입해 국내 시장에 유통시키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림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계열사 ‘HK상사’를 내세워 수입육을 유통시키고 있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HK상사는 하림코리아(Harim Korea)의 준말로 수입 닭고기 유통 대행업을 하는 회사다. 지난 2010년 9월9일 전북 익산에 설립된 이 회사는 미국과 브라질 등에서 수입한 닭고기를 유통업체에 연결하는 유통 대행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 오 모 대표가 하림 재정팀 상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장 계열사 논란이 불거졌다. 뒤늦게 하림측이 HK상사에 대해 계열사가 맞다고 인정하면서 위장 계열사 의혹은 풀렸지만 이번엔 또다른 비난에 맞닥뜨리게 됐다. 우리나라 양계산업을 이끌어온 하림이 뒤로는 수입 닭을 대량 유통시켜 국내 닭 가격을 폭락시켰다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지난해 HK상사가 들여온 수입육은 2만3000톤으로 전체 수입육의 21%에 달하며, 올해 상반기 들여온 수입육은 1만2000톤으로 전체 수입육의 16%에 달하는 수준으로 밝혀졌다. 비록 하림측은 올해 하반기 수입육 수요가 감소해 4000톤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국내 들어오는 수입육의 4분의 1을 HK상사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수입육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국내 닭 가격은 폭락하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2000원 정도의 가격이 형성돼야 하지만 공급 물량 과잉 탓에 이에 한참 못미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대한양계협회는 지난 13일 성명서를 통해 “수입닭고기로 만든 닭강정이 판을 치고 생산과잉으로 인한 불황이 예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림은 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수입 강도를 더욱 높이며 육계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하림의 닭 수입을 지탄했다.


또 “하림은 계열화 사업이란 명분하에 노비문서를 만들어 지금까지 육계 농가를 괴롭혀 왔다”며 “농가와 회사는 한 가족이라고 입버릇처럼 외치면서도 정작 농가의 생계와 직결되는 사육비 현실화조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자사 몸집불리기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도덕적인 기업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라는 말로 극에 달한 배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하림 측은 “수입육의 증가와 국내 닭 가격 폭락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하림 관계자는 “닭고기를 몰래 수입해 유통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며 “직접 유통을 하는 게 아니라, 유통업체들을 대상으로 수입 닭을 정식 구매 대행하고 있는 것이고 (주)하림과는 소유지분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업무와 경영도 독립적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닭으로 만드는 신선육과 수입육은 서로 다른 시장이 형성돼 있어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며 “오히려 최근 대기업 등이 양계업에 뛰어들면서 작년 하반기 공급 과잉이 생긴 것이 주원인”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수요는 3% 밖에 늘지 않았지만 공급물량은 18%가량 늘었다. 국내 닭 가격의 폭락을 HK상사에게 돌리는 것은 잘못된 지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 닭고기 수입이 줄어든 이유가 국내 닭고기 가격이 폭락한 것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국내 닭고기 가격이 줄어 수입육 소비가 준 것은 맞다”고 대답했다.


일각에서는 HK상사의 수입육 유통에 대해 ‘하림이 계열사인 HK상사를 통해 수입육을 신선육으로 속여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 섞인 의혹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하림측은 “일부 소비자들의 요구하므로 어쩔 수 없이 수입육을 다루긴 하지만 이는 전체 물량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며 “HK상사에서 수입된 닭고기는 유통업체에 판매될 뿐 하림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해명에도 ‘분노’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하림의 해명에도 HK상사의 닭고기 수입에 대한 비난 여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 양계산업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하림에 대해 국내 양계산업 종사자들이 깊은 배신감을 느낀 탓이다.


국내 양계산업은 하림과 함께 성장해왔다. 하림 김홍국 회장(사진)은 소규모 업체로만 이뤄진 국내 양계산업에 뛰어들어 현대화된 도축 공장을 짓고 공장화ㆍ체계화시키면서 전국에 뿌리를 내렸다.


김 회장은 IMF 등의 위기 상황에서도 양계산업 외길을 굳건히 걸어왔다. 특히 “수입 닭고기에 대응해 국내 양계산업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정부 자금까지 지원받아 날로 번창했다. 덕분에 국내 닭고기 시장에서 하림은 지난해 매출 7144억원, 시장점유율 21.0%로 업계 1위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닭고기 하면 하림!’ 이라는 자사의 광고 문구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HK상사는 하림의 비상장 계열사로 김 회장이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지분 역시 김 회장 관계자들이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100% 김 회장의 지배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K상사의 매출에 대한 이익은 고스란히 김 회장에게 가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하림이 HK상사를 내세워 닭고기 수입에 앞장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생겼다. 특히 김홍국 회장은 “수입닭으로 국내 닭 가격이 떨어지면 이는 곧 하림의 피해로 돌아온다”며 국내 양계산업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인물이다.


이에 대해 양계농가에서는 하림과 김홍국 회장의 ‘두 얼굴’에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한 농민은 “대한민국 양계업체를 대표하고 권익을 보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하림이 뒤로는 닭고기 수입을 주도하고 있었다”며 “이 같은 하림의 횡포로 국내 양계농가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하림의 이중적 행보로 인해 양계농가와 소비자들의 신뢰를 한꺼번에 잃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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