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엔 이상한 버스가 있다. 분명 서울시내에서 유료로 일반 승객을 운송하는 정기노선버스인데, 교통카드를 쓸 수 없고, 현금만 받는다.
이 버스를 자세히 살펴보면,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간다. 서울시내버스 또는 마을버스와 동일한 도색의 동일한 차량으로 운행하기에 얼핏 보면 정상적인 시내ㆍ마을버스처럼 보이지만, 버스 내ㆍ외부 어디에도 노선번호는 표기돼있지 않다. 차량번호 또한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이 아닌 자가용 번호판이다.
이 ‘괴 차량’의 정체는 양재역에서 청계산 옛골까지 운행하는 자가용 유상운송 버스다. 청계산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서초구청이 임시 운행허가를 내줬지만, 교통카드 사용이 불가능한 점, 대체 정규 노선이 생겼는데도 허가를 취소하지 않는 점 등이 문제로 제기되면서, 특혜 의혹마저 일고 있다.

◇ 카드 안받는 ‘자가용 버스’… 구청은 ‘모르쇠’
청계산행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전효진(23) 씨는 “교통카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운전기사의 말에 당황하며 현금을 꺼냈다. 전 씨는 “교통카드를 받지 않는다기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내긴 했지만, 환승 할인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역시 청계산행 버스를 이용한 장현정(28) 씨는 “버스 기사는 마을버스에 비해 저렴하다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승객이 지하철이나 다른 시내버스로 환승할인 혜택을 받기에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며 “교통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 시내ㆍ마을버스와 같은 도색ㆍ디자인을 적용한 동일한 차종을 운행하지만, 노선 번호도 없고 '노란색 아빠사자'(영업용 차량 번호판을 일컫는 말. 영업용 차량의 번소판은 노란색 바탕에 바ㆍ사ㆍ아ㆍ자 중 한 글자가 들어가는 것에서 유래했다. 네티즌 사이에 '진짜 택시와 가짜 택시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전파되면서 유명해졌다) 번호판도 달지 않은 이 버스는 양재역과 청계산 옛골을 오가는 자가용 유상운송 버스다. 토ㆍ일요일과 공휴일에만 운행하는 이 버스는 양재역에서 청계산까지 13개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운다.
지난 2007년 서초구는 주말이면 수많은 등산객이 청계산을 찾는데 이 구간을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4432번 1개뿐인 점을 감안, 2010년 1월까지 3년간 토·일요일과 공휴일에 운행하도록 허가를 내줬다. 요금은300~500원으로 현금만 받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버스를 운행하는 곳은 '청룡산'으로 버스운송업체가 아닌 일반 회사다.
서초구가 이 버스 운송 허가를 내준지 한 달 뒤 서울시는 등산객 편의를 위해 토ㆍ일요일과 공휴일에만 다니는 버스 노선(8441번)을 신설하고, 서초구에 이 자가용 유상운송 버스 허가를 취소할 것을 요청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2조 및 동법 시행령 제39조 등은 자가용 자동차 유상운송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나, 해당 시설의 소재지가 대중교통수단이 없거나 그 접근이 극히 불편한 지역인 경우 등에 한해 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허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초구는 당초 이런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고 버스 운송 허가를 내줬지만, 곧바로 서울시가 새 노선을 만들어주면서 허가 요건이 사라졌다. 그러나 서초구는 서울시의 허가 취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명국 서초구 옐로버스팀장은 “이미 허가를 내준 데다, 해당 업체가 버스 운행을 위해 차고지를 마련하고, 기사를 채용하는 등 투자를 한 상태라 취소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2007년 8월에도 평일과 토요일에만 이 구간을 운행하는 버스 노선(8442번)을 추가로 신설했다. 그 뒤 서울시는 올 7월까지 6차례 서초구에 공문을 보내 환승 할인을 받을 수 없는 자가용 유상운송 버스의 허가를 취소할 것을 요청했지만,
서초구는 자가용 유상운송 버스 허가가 끝난 2010년 1월 한 차례 버스 운행 허가를 연장해준 데 이어 올 1월 다시 내년 1월로 재연장해주는 등 5년째 서울시의 허가 취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공성국 서울시 버스 노선팀장은 “서울시내에서 현금만 받는 버스는 없다”며 “양재역~청계산까지는 거리가 짧아 환승 시 추가 요금이 100원을 넘지 않는데 500원이면 비싼 것”이고 말했다.
서울시는 감사관실에 이 버스 허가와 관련, 법령 위반 여부와 허가 과정에 대한 감사를 의뢰했다. 권오혁 서울시 버스관리과장은 “자가용 유상운송의 허가 요건이 이미 소멸됐는데도 서초구가 계속해서 허가를 연장해주는 것은 명백한 법령 위반”이라고 말했다.
◇ 서울시 감사마저 무시… ‘자가용’ 업자 위한 특혜?
‘청계산 자가용 버스’ 허가를 취소하라는 통보에도 서초구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서울시가 이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초구에 해당 버스 노선의 운송 허가를 취소하고, 구청 관련 공무원 5명을 문책하라고 통보했다”며 “그동안 6차례 이 버스 운송 허가를 취소하라고 공문을 보냈으나, 서초구가 이를 거부하자 감사를 벌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자가용 버스 허가는 일시적으로만 내줄 수 있도록 규정돼 있으나 서초구는 이를 무시하고 6년째 주말마다 지속적으로 운행하게 해줬다. 이 버스의 경우처럼 정기 운행하는 버스는 노선 운행을 위한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함에도 서초구는 이를 묵인해 왔다.
사업자 선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감사관실은 :서초구는 당초 사업자 선정 기준을 ‘공고일 현재 서울시에 1년 이상 거주한 자’로 명시했다가, 실제 공고를 낼 때는 ‘1년 이상 서초구 거주자’로 변경, 당시 서초구 관내 마을버스 사업자 한 곳이 단독 응찰하는 사실상 특혜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중간에 자가용 버스 사업자가 바뀌면서 사업권 선정 과정을 다시 밟아야 했지만, 서초구는 이를 어기고 연장 허가만으로 새 사업자가 들어설 수 있게 했다.
서초구는 이 자가용 버스 차령(車齡)을 3년 미만으로 제한해 놓고 실제 4년이 넘은 차량이 다녀도 규제하지 않았다. 이 버스 중 2대는 환경개선부담금과 과태료 등 5건의 지방세 등을 체납해 압류된 채 운행하고 있었다. 원래 사업자를 뽑을 때 지방세 체납과 자동차 압류 여부를 고려해야 하나 서초구는 이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감사 결과와 관련, 서초구는 “버스 운송 허가는 구청장 권한이며, 주말이면 청계산을 찾는 승객 수요가 많아 허가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교통카드를 쓸 수 없고, 환승 할인도 받을 수 없어 불편하다면 그 버스를 안 타면 될 것 아니냐”며 “그런데도 승객이 많다는 건 수요가 있다는 뜻이고, 수요가 있어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운수업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서울시의 감사에도 불구하고 구청에서 이토록 ‘자가용 버스’ 업자를 감싸는 배경에는, 특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승객 안전 위협’ 지적도 제기돼
영업용 노선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운행하는 ‘자가용 버스’ 운행이 계속될 경우, 승객의 안전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익명의 한 영업용 버스 운전기사는 “영업용 버스를 운행하려면 도로교통안전공단에서 실시하는 운전종사자 안전교육, 신체검사 등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리고 많은 회사들이 만26세 이상, 55세 미만의 운전자를 채용하고 있다. 그런데 영업용 버스가 아닌 자가용 버스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엊그제 면허를 취득한 스무 살 어린 청년이나, 거동조차 제대로 못하는 팔순 노인 등이 대형면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검증 절차도 없이 운전대를 잡아도 이를 규제한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