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인에게 풍요로움, 고객에게 신뢰감, 임직원에게 자긍심을 주는 수산업 중심체로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협동조합이 된다”
수협중앙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수협의 ‘미션’이다. 이 ‘미션’과 상반되게도, 수산인과 고객, 임직원들에게 풍요로움과 신뢰감, 자긍심을 주기 어려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수협 직원들의 비리가 잇달아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일부 수협 직원이 해산물ㆍ면세유 등을 빼돌리는가 하면, 대의원과 이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돈봉투가 오간 사건도 적발됐다. 수산인과 고객 사이에서는 “더 이상 수협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해산물ㆍ면세유 횡령 잇달아
보령수협은 지난 19일, 어민에게 지급해야 할 면세유를 실제보다 적게 주고 남은 기름을 빼돌린 혐의가 있는 직원 A씨를 대기발령하고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수협 측은 이 범행에 가담한 5~6명의 직원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령수협의 한 관계자는 “어선에 면세유를 적게 주유하는 등의 문제로 그동안 어민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아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며 “보령수협의 연간 면세유 공급규모가 150억원 상당인 점으로 볼 때, 이 씨가 횡령한 면세유는 수천만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보령의 한 어민은 “10드럼을 주문하면 2천ℓ를 주유해야 하는데 1천940~1천950ℓ가 되면 ‘다 들어갔다’는 이유로 공급을 중단했다”며 “이 때문에 그동안 어민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어민들의 꽃게를 상습적으로 빼돌려 판매한 혐의(특수절도)로 수협직원 B씨 등 2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B씨는 어민들이 판매를 맡긴 꽃게를 조금씩 빼돌리는 수법으로 75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범행은 CCTV에 고스란히 찍히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이들 외에도 범행에 가담한 직원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제주수협의에서도 비슷한 의혹이 불거졌다. C씨는 제주수협에서 근무하던 지난해 8월 수협 저장냉동고에서 2000여만원 상당의 갈치를 훔친 혐의를, D씨는 40여만원 상당의 어업용 면세유 400ℓ를 훔친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규정상 비리 사건은 수협중앙회에 보고해야 하지만, 제주수협은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도록 관련 내용을 수협중앙회에 보고하지 않아 제주해양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수협은 경찰 조사 이후 수협중앙회에 보고할 계획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 금품 수수 후, 부정 대출도…
수협에서 비리 사건이 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수협중앙회 간부 E씨가 건설사에 거액 대출을 알선하고 뒷돈을 챙기다 적발됐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5부에 따르면 E씨는 신협과 저축은행 등에서 100억원이 넘는 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4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E씨는 자금이 필요한 기업의 상황을 악용해 공식 수수료와 함께 추가로 수수료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게다가 검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명계좌를 만들고 허위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협 관계자가 금융사기 행각을 벌인 것 역시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8월 부산시수협에서 근무하는 간부 F씨는 중도매인들에게 금품을 받고 무려 100억원 상당의 금액을 부정 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부산해양경찰서는 F씨에게 업무상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라남도 강진수협에서는 예금주의 동의를 받지 않고 예금주의 내연남에게 수억원을 대출해준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울산해양경찰서 역시 수협 조합 규정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수산 업체의 청탁을 받고 수산물 경매 수수료를 부당 지급한 부산수협 G이사 등 임원 3명과 직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밖에 부산수협에서도 수십만원을 수수하고 오징어 경매대행 수수료를 100여회에 걸쳐 총 1억원 가량 초과 지급하다 지난 3월 적발됐다.
◇ 돈봉투 오가는 혼탁 선거까지…
포항수협에서는 수협 대의원과 이사 선거 과정에서 20여명의 수협 임원과 조합원들이 돈 봉투를 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은 지난 1월 포항수협 선거 과정에서 약 1억5500만원의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로 포항수협 전 이사 H씨 등 14명을 구속하고 6명을 불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8월 치러진 수협 이사 선거를 앞두고 대의원들에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건네거나 주겠다고 회유하며 이사 선거에서 도움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수협의 부정선거가 어느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라남도 목포수협도 5명의 조합원이 불구속 기소된 상황이다.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은 지난 3월 특정 후보 지지를 부탁하며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목포수협 조합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 지지를 부탁하며 조합원들에게 수십~수백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밖에 인천수협에서도 비슷한 일로 전ㆍ현직 수협 조합장들이 사법처리를 당한 전례가 있다.
◇ 계속되는 의혹… 외면에만 급급
수협중앙회는 매년 국정감사가 있을 때마다 비리 문제로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에도 송훈석 민주통합당 의원, 정해걸ㆍ성윤환 당시 한나라당 의원,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 등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수협중앙회의 비리 문제를 지적했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당시 국회의원들은 “수협중앙회가 회원조합 경영 정상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있지만 회원조합 임직원들은 경영 개선은 하지 않고 수협중앙회에서 받은 경영개선자금을 활용해 부당 대출, 횡령, 배임 등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질타한 바 있다.
수협에서 각종 비리가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수협중앙회는 무사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비리 관련 자료에 대해 수협 측은 “해당 자료의 출처가 수협이 아니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다.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국회 제공 자료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또 “비리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으나, 최근 5년 동안에는 큰 사고가 없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수협중앙회가 단위 수협 감사 역할을 소홀히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 수협중앙회는 “단위조합의 모든 사안을 수협중앙회가 챙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기적으로 2년에 한 번 정기감사를 실시하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감사를 한다. 그렇지만 의도적으로 서류를 조작하면 감사를 하더라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수협에서 비리가 자주 불거지는 이유를 묻자 수협중앙회 측은 “드릴 답변이 없다”라고 말했고, 다시 질문하자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수협중앙회 한 관계자는 “비리 문제를 고치려고 한다. 그런데 원인을 알기 힘들다. 원인이 뭐든 잘되도록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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