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소송을 벌이나

전성운 / 기사승인 : 2012-09-26 16: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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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익 대변 미국식 저작권법 ‘세계로’

미국은 전 세계적인 새로운 무역협상에서 강력한 지적재산권 조항의 도입을 희망하고 있지만, 남미·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신흥 시장에서는 미국식 지적재산권의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의도적으로 지적재산권을 무역협정에 포함시켜 일방적이거나 불균형적인 지적재산권 문화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항구나 트럭, 컨테이너선 등으로 대표되던 국제 무역은 최근 인터넷 기업, 제약회사, 음악 및 영화 회사 등이 주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특허나 상표권 그리고 저작권의 문제로 변화되고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의 세계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라이선스 요금만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미국 농산물 수출과 맞먹을 정도이고, 작년 로열티의 순수 잉여분은 농업의 거의 두 배에 달할 정도였다. 때문에 미국은 자국식 지적재산권과 관련 법 역시 전 세계로 확신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전 세계적인 저항을 받고 있다.


◇ 미국, 자국기업 보호에 ‘올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콜로라도 대학의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케이스 마스쿠스의 주장을 인용해 “미국이 미국식 지적재산권법을 수출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상 대부분 맞는 얘기”라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 초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을 부속협정으로 채택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면서 지적재산권을 확립시켜왔다. 개발도상국의 반발에도 불구, WTO 회원국들에 특허·저작권·상표권 보호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도록 강제했다.


많은 국가들은 이런 조치가 부당하다고 항의했고 경제학자들도 “특허와 같은 독점권을 인정하는 것은 상거래를 자유화하기 위해 관세를 낮추자는 기본원칙과도 상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이렇듯 강력한 규칙을 만드는데 몰두하고 있는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소프트웨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성장하고 인터넷이 세계시장에 편입되는 한편, 디지털미디어가 확산되면서 디즈니·유니버설·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회사들의 로비를 받게 되면서 이들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함이 크다.


때문에 이들에겐 단지 법에 의한 규칙을 만드는 정도로 보일 순 있지만 개발도상국들이나 타국 기업들에겐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업들의 착취일 뿐이다. 이들 국가들은 점점 자유무역을 빌미로한 ‘무역협상’ 자체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개발도상국들이 지적재산권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견을 펼친 덕분에 2001년에 시작된 WTO 도하 라운드에서도 이 문제는 계속 논의에서 배제됐다. 그러나 미국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나라들과 소규모 협상을 계속 유지했고 이중 가장 큰 것이 2010년에 시작된 8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함께 구성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은 이 모임이 미래의 제반 협정을 위한 범세계적인 기구로 변모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TPP에서조차 미국 정부가 이미 미국법 체계 내에 있는 지적재산권 특히 저작권법의 원칙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논의의 진전이 상당히 어려웠다.


미국 정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의 지속적인 로비를 받으면서 상당히 엄격한 저작권법을 강조했지만 이는 다른 국가들에는 큰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수잔 아론슨 교수는 “미국은 대체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 공정한 이용이라는 개념을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했다”며 “이 개념은 더구나 다른 나라의 경우 어떨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TPP회원국 중에서 저소득 국가인 베트남의 경우 위조와 같은 지적재산권법 문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있으며 좀 더 발전된 경제국가인 칠레조차 미국의 제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때문에 미국의 지적재산권 정책을 지지하는 인사들조차도 미국의 협상전략이 불균형적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가령, TPP 회원국인 호주는 작년 금연욕구를 줄이도록 모든 담배를 단순한 올리브 그린색 포장으로 판매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그 이후 그러한 정책이 자신들의 상표권을 훼손하는 지적재산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세계적인 담배 회사들과 법정 싸움을 벌이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행히 지난달 호주 최고법원은 담배제조회사들의 주장을 기각했지만, 우크라이나·온두라스·도미니카공화국이 “단순한 담배 포장은 WTO TRIPs 규정에 어긋난다”며 호주 정부를 WTO에 제소함에 따라 법적 분쟁은 국제무대로 옮겨졌을 뿐이다.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가 소송비용 일부를 부담하며 도미니카 공화국과 손을 잡은 것은 WTO 관련 제소에서는 아주 흔한 일로 사실상 필립모리스와 같은 담배회사가 호주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필립 모리스는 이와는 별도로 호주와 홍콩이 투자조약을 맺으면서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투자자 지위를 이용한 소송 메커니즘(ISD)’을 활용해 불공정한 과도한 수용이라고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필립 모리스는 법적 지위 획득을 위해 문제 제기 직전 본사를 호주에서 홍콩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호주정부는 향후 투자자 지위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 미래의 어떤 조약도 거부할 것이며 TPP에 있는 현행 조항에 대해서도 면책조항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그래서 결국 누구를 보호하는가?
WTO와 투자자 협약에 근거한 소송이 호주에서 승리할 것인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이에 대해 시드니 대학 법대교수인 루크 낫티지는 “지적 재산권 분야는 국가의 이익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종종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며 “이 분야는 말썽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해서는 서비스 협정과 같은 다른 조약을 훨씬 능가한다”고 말했다.


세계 무역이 제조업 현장에서 벗어나 온라인이나 디지털과 같은 부가가치산업 쪽으로 옮겨가면서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든 제작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허용하는 법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국가 간에 그런 법률을 받아들이고 채택하는 것은 시간을 두고 유연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그런 법률이나 규칙이 미국과 같은 직접적 수혜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폭넓은 의혹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상태다.


이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덕분에 우리 역시 각국과 FTA를 맺었고 여기에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조항도 당연히 포함돼있다. 따라서 우리 역시 국민의 건강과 같은 자주권 영역에 속하는 소중한 국내 정책마저 국제 조약에 의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터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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