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근혜식 전세제도’ 유감

유상석 / 기사승인 : 2012-09-26 16: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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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및 부동산 분야 담당 취재기자라는 이유로, 기자는 지인들에게서 두 분야와 관련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얼마 전, 한 지인이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유 기자, 박근혜 후보가 ‘목돈 안드는 전세제도’라는 걸 내놨다던데, 아무리 살펴봐도 이해가 안되오. 그게 도대체 뭐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제도는 집주인이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전세금)을 받지 않는 대신 금융기관에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도록 하고 세입자는 그 이자와 수수료를 금융기관에 납부하게 하는 방식이다.


전세제도는 ‘돈이 필요한’ 집주인과 ‘집이 필요한’ 세입자의 이해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한 제도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이자를 지급할 의무를,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야 할 의무를 서로 면한다.


박 후보가 내놓은 이 정책은 ‘돈이 필요하면 세입자를 괴롭히지 말고, 은행에서 빌려라. 세입자도 목돈 구하느라 애쓰지 말고, 비교적 적은 액수의 임대료를 은행에 지불해라. 그러면 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아서 좋은 일 아니겠느냐’는 의도로 구상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설명하니, 지인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도 이해하기가 어렵소. 그러니까 애초에 집주인이 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거요?”


사실 이는 기자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박 후보가 좋은 의도로 이 정책을 내놓았을진 몰라도, 세를 놓고자 하는 집주인, 전셋집에서 생활하려는 세입자, 돈을 빌려줘야 할 입장인 은행 3자 모두 만족하기 어려운 정책이라는 것이 기자의 견해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왜 내가 대출을 받아야 하느냐”는 점을 납득하기 어렵다. 타인의 금전을 일정 기간 사용한 후, 기간이 경과하면 반환한다는 점에서 일견 차이 없어 보이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하게 되면 등기부에 기록이 남는다는 점, 자신의 신용도 및 대출한도 하락이 예견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빚이 없는 집주인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세입자의 입장에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세입자가 전세를 선택하는 것은 일정한 금액을 매달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매달 돈을 낼 바에야 이런 복잡한 제도가 아닌, 그냥 ‘월세’를 선택하면 된다는 뜻이다. 집주인이 아닌 은행에 돈을 지불해야한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돈은 집주인이 빌리는데, 왜 이자는 내가 갚아야하느냐”는 저항 여론에 직면하기 쉽다.


은행의 입장에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절대로 대출해주지 않았을 사람에게, ‘박근혜 식 전세제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격으로 억지 대출을 해주는 경우가 생기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기자가 박 후보의 소위 ‘목돈 안드는 전세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박 후보에 대한 호오(好惡)와는 별개의 문제다. 주거 문제로 고민하는 국민의 시름을 덜기 위해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하는 자세는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정책을 내놓기 전에, 이 정책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말 도움이 될 정책인지 좀 더 신중히 고민하는 자세가 아쉽다. 이런 고려 없이 정책을 남발한다면, 좋은 의도로 내놓은 정책이라도 “생각 없이 막 던진다”는 비판 여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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