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 보고서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경제 주도권 싸움이 IT산업으로 불똥이 튀는 양상이다. 이들은 보고서를 통해 중국 기업들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화웨이와 ZTE는 즉각 성명을 통해 이 보고서가 주장하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했고 중국 정부 역시 ‘근거 없는 날조’라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양국 간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경제 전쟁 속에서 나름 국가주의와 무관하다 여겨졌던 IT분야 마저 최근 국가적 이익논리에 휩싸이고 있다. 전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범위한 저작권 논쟁과 중동지역을 비롯한 분쟁국가에서 펼쳐지는 기술전쟁, 그리고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무역 전쟁에서도, IT산업은 국가적 이익이라는 논리 앞에 전쟁터가 되고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다. 중국이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급성장으로 지속하고 미국은 성장정체에 빠져들면서 두 국가 간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어 가자 미국이 중국 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난 8일(현지시각) 발표된 “중국의 대형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가 자국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의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의 보고서를 둘러싸고 일어난 논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전자통신회사들을 악의적인 목적으로 이용할만한 충분한 동기와 수단과 기회를 갖고 있는 나라”라며 “중국의 화웨이테크놀러지 사와 ZTE 등 세계 최대 수준의 전자통신장비와 휴대전화 생산회사들이 미국 내에서 기업 합병이나 인수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급속한 성장을 거듭해온 화웨이는 현재 세계 2위의 전자 통신장비 공급자로 14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성업 중이다. ZTE 역시 세계 4위의 글로벌 휴대전화 생산회사로 전 세계에 9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다.
위원회는 “미국 내에서 당한 사이버 공격의 진원지가 중국으로 추적된 사례를 감안할 때 미국 정부 전산시스템은 스파이 혐의가 있는 이 양대 기업이 생산한 어떤 부품이나 장비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미국 기업들 역시 중국의 양대 IT 회사와의 거래를 되도록 회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 발표에 앞서 마이크 로저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미 CBS의 시사 프로그램 ‘60분’과 인터뷰를 통해 미국 기업들은 화웨이와 ZTE의 제품을 불매하라며 논란의 시작을 알렸다. 공화당인 로저스 의원은 민주당 간사인 더치 루퍼스 의원과 공동으로 이번 보고서를 발표했다.

◇ “안보 아닌 정치적 목적의 보고서”
이 보고서는 지난달 중국의 양대 회사 최고경영자들을 의회 청문회에 출두시키는 등 지난 1년간의 의회 조사 결과에 따른 결과물로 위원회는 “화웨이와 ZTE사가 미국 내에서 사업을 확장하려는 야심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 하원 보고서는 “이 두 회사가 모두 중국 정부와의 관계나 정부 지원 내역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특히 화웨이는 회사의 구조, 경영 내역, 재무 현황 등의 상세 정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위원회의 의심에 부합되는 면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 대표들은 증언을 통해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 행위를 정면 부인했다. 양 회사는 “우리의 생산품은 서구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두 사용되고 있다”며 자신들은 중국 정부와 무관하며 공산당 정부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화웨이는 “조사 자체가 사이버 안보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목적을 향해 빗나가고 있으며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또 “세계의 거의 모든 전자통신장비 회사들은 미국이나 서구 회사들까지도 모두 중국 내에서 장비들을 제조하고 있으며 같은 생산 라인을 사용하고 있어 중국에 본사를 둔 중국 회사들만을 단속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하원정보위가 요구하는 기업 자료나 사업 내역에 관한 방대한 양의 기록은 ‘비현실적’이며 어떤 기업이라도 그런 종류의 회사 경영에 관한 최고 기밀을 다 내주는 ‘책임있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항의했다.
화웨이사의 윌리엄 플러머 현지 부사장은 “우리 회사는 국제적으로 신뢰받고 존경받는 회사이다”라고 증언하면서 수사에는 모든 협조를 다 하겠지만 사업상의 거래 기록 등은 보호받기를 원했다.

◇ 미국 대선 위한 자료?
이 보고서로 인해 미국 정계에서도 “미국의 중국 견제 와중에 엉뚱하게 중국 IT 기업들이 미국 대선 정국에서 몰매를 맞고 있다”는 비판과 “중국 기업은 다 의심스럽다”는 논리가 거세게 충돌하며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여야 합의로 나온 하원의 이 보고서는 사실상 미 대선용 자료다. 대선 후보 두 명 모두 중국의 무역 협정 위반 사례에 언제라도 철퇴를 내릴 준비가 돼 있고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는 중국을 외환 사기범에 지적재산권 도둑으로까지 비방하면서 이를 엄단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이 보고서에 대해 '근거 없는 날조'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보고서 발표 직후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 대변인은 “미국 의회가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받아쳤다. 그는 정례브리핑에서 "해당 기업들은 국제화 경영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대미 투자는 중미 양국에 ‘윈-윈(Win-Win)’하고 있다"며 "미국 의회가 사실을 존중하고 양국 경제와 무역에 유리한 행동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날 선단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주관적인 추측과 허위 사실에 기초한 ‘근거없는 날조’이며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하고 공정 경쟁에 참여하는 것을 배척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며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강력히 비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미국 의회가 줄곧 주장해 오던 자유무역 규정과도 모순되고, 상호 간의 시장을 개방하고 확장하는 데 불리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미국 의회는 중국 기업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양국의 기업이 시장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투자은행 ‘비즈니스 디벨롭먼트 아시아’의 찰스 메이너드는 “미국인들은 자국 지위가 약화되면서 중국이 언젠가 세계 정상 자리를 빼앗을까 염려한다”며 “의원들이 국내 유권자들의 우려에 영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 의회에 이어 캐나다 정부도 화웨이를 안보상의 위협으로 규정했다. 또 그동안 ZTE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세계 최대 네트워크장비업체인 시스코 역시 “ZTE와 맺은 제휴 관계를 청산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 당국이 강력한 반발을 시사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태가 중국 내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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