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신화가 무너졌다”
이번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기업회생절차(구. 법정관리) 신청 행보와 관련, 세간에서 나오는 평가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평가받아온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경영권을 노리고 ‘의도적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지난 4일 스스로 웅진홀딩스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올 초 알짜 계열사 웅진코웨이를 선뜻 시장에 내놓으며 그룹 회생의 의지를 불태웠을 때만 해도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보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기업회생절차 신청 행보와 관련해서는 ‘도덕적 해이’라며 혹평받고 있다.

◇ 워크아웃 논의 중 돌연 기업회생 신청
윤 회장의 웅진홀딩스 대표이사직 사퇴는 지난달 26일 그룹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전격적인 기업회생절차 신청이 계기가 됐다. 당시 채권단은 웅진그룹과 워크아웃 여부를 논의하던 중이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윤 회장이 경영권 유지를 위해 채권단과의 워크아웃 논의를 일방적으로 뒤엎고 기업회생을 택했다”면서 “이는 곧 우량계열사인 웅진코웨이 매각을 무산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기업회생 워크아웃보다 채무 탕감 면에서 훨씬 유리한데, 윤 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이를 악용했다는 것이다.
기업회생 신청 당일, 윤 회장 자신이 웅진홀딩스 신광수 대표와 공동대표로 취임했던 것도 논란을 키웠다. 이를 두고 채권단 측에선 윤 회장이 법정관리인으로 자신이 지정될 것을 확신하고, 1조1400억원에 이르는 웅진홀딩스의 빚을 갚지 않은 채 그룹을 정상화할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이번 액션을 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 회장은 이 같은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 4일 웅진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지 9일 만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윤 회장이 ‘도덕적 해이’라는 질타를 받는 이유는 또 있다. 기업회생 신청 직전 계열사에서 빌렸던 대여금을 상환하고 윤 회장의 부인이 계열사 주식을 전량 처분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웅진홀딩스는 기업회생 신청 하루 전날인 지난달 25일 계열사 웅진씽크빅과 웅진에너지에서 빌린 단기 대여금 530억원을 모두 갚았다. 채권ㆍ채무관계가 동결되는 기업회생에 앞서 빚을 상환해 웅진홀딩스가 이들 계열사의 손해를 대신 떠안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부분이다.
특히 상환 만기가 그달 28일인데도 사흘이나 앞당겨 갚은 점에 대해 계열사 손실을 줄이기 위해 미리 대여금을 갚았다는 의구심을 키웠다. 그러나 이에 대해 웅진 측은 “그 전에도 그와 비슷한 거래가 많았다”는 입장을 전했다.
◇ 윤 회장 부인 돌연 주식 처분… 의도적 손해 회피?
윤 회장의 부인인 김향숙씨가 계열사인 극동건설 부도로 웅진그룹의 상장 계열사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기 전 이틀 동안, 보유한 웅진씽크빅 주식 4만4000주(0.17%)를 모두 처분한 부분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김씨가 주가 폭락 전 주식을 처분하면서 폭락 시와 비교해 5000만원 가까운 손해를 회피한 것이 윤 회장이 개입한 내부자 거래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두 달 전쯤에 김 씨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일이 있어 씽크빅 주식을 팔려고 했으나 못 팔았던 것뿐”이라며 “공교롭게 매도시기가 안 좋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 웅진그룹의 앞날은…
이제 재계의 시선은 사면초가에 빠진 윤 회장이 어떤 돌파구를 만들어 낼지에 집중되고 있다.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 채권단은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파산3부에서 열린 기업회생절차 신청 여부에 대한 타당성 심리와 관련 “윤석금 회장이 물러났어도 신광수 대표 역시 윤 회장의 측근이기 때문에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행대로라면 윤 회장의 공동 대표이사직 사퇴로 홀로 남은 신광수 웅진홀딩스 대표이사가 법정관리인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2006년 통합도산법에 근거해 도입된 ‘기존 관리인 유지’ 제도 때문이다.
이 제도는 당초 기존 경영진이 경영권을 놓칠까 봐 회생 절차를 꺼리지 않게 하겠다는 의도로 도입됐다. 하지만 오히려 기업 오너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기업회생 신청을 남발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채권단 일각에서는 웅진홀딩스가 영업활동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계열사 주식을 관리하는 지주회사라는 점을 들어 ‘청산절차’를 밟는게 낫다는 강경론도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검찰 쪽의 반응도 윤 회장에겐 다소 불리하게 치닫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소지가 큰 법정관리를 놓고 기업 구조조정의 전반적인 제도 개선에 착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간부회의를 통해 기업이 회생보다는 경영권 유지와 채무감면을 노려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판단,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을 간부들에게 지시했다.
윤 회장을 상대로 한 고소 움직임도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지난 2일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서울중앙지검에 윤 회장과 신광수 대표 등 웅진 경영진 4명을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웅진코웨이 매각 우선협상대상자였던 MBK파트너스 측도 최근 웅진을 상대로 소송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홀딩스 측이 MBK파트너스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기업회생를 신청하는 바람에 계약금까지 묶이게 돼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 신청 전 몇달 동안 대규모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발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LIG건설처럼 검찰이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는 LIG그룹이 지난해 3월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LIG건설을 통해 242억2000만원의 CP를 부당하게 발행,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혐의로 최근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과 맞물리는 부분이다.
앞으로 웅진그룹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윤 회장이 채권단 압박에 백기를 든 만큼 웅진그룹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웅진코웨이 매각대금으로 웅진홀딩스 빚을 갚고 건설, 태양광 등 부실사업 부문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 채권단은 웅진씽크빅, 웅진식품 등 알짜 계열사 매각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변수는 있다. 갑작스레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윤 회장에 대해 채권단 불신이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윤 회장이 홀딩스 대표를 사임했지만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에 개입할 경우 채권단과의 갈등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윤 회장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해서 기업회생절차까지 오게됐다"며 "채권단, 임직원, 나아가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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