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밥그릇 싸움이 끊이질 않는 의료계에서 최근 폭풍의 핵은 ‘천연물신약’이다. ‘한약’을 토대로 만들어진 제품들이지만 의사 처방은 보험급여를 적용하고 있으나 한의사 처방은 미적용 되는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의학계는 왜곡된 천연물신약 정책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며 배타적 처방권을 요구하고 있고 양의학계에선 천연물신약은 전문의약품이라며 한약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 한의학계 “양의사 처방 금지하라”
한의사들의 주장은 “천연물신약은 한약의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당연히 처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방제제가 원료로 사용됐으니 한의사들의 것이라는 입장인 셈이다. 이에 전국 한의사들은 ‘대한한의사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한약으로 만들어진 천연물신약에 대한 양의사 처방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안재규 비대위원장은 “한약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처방이 천연물신약으로 변질돼 한약에 대한 비전문가인 양의사들이 부작용도 모른 채 무턱대고 처방해 선량한 국민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며 “국민들이 안전한 한의약 치료를 받기 위해 천연물신약 정책의 전면 백지화와 현재의 왜곡된 한의약 관련 법령을 일체 재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천연물신약으로 생산되는 7개 품목 중 ‘신바로캡슐’의 경우 국내 한방병원에서 처방하는 ‘청파전’과 같고, ‘레일라정’은 ‘활맥모과주’라는 처방을 그대로 원용한 제품”이라며 “한약제제로 개발되던 중 갑자기 천연물신약으로 분류돼 시판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신약을 한의학과 관련성이 없는 양의사들이 처방하고 있어 국민들에게 위해를 끼치고 있다”며 “식약청의 왜곡된 고시변경으로 엉터리 천연물신약이 양산되는 천연물신약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의학계는 “천연물신약은 천연물을 이용해 현대 의학적으로 연구·개발된 전문의약품”이라며 “한의학계가 주장하는 음양오행원리에 맞춰 지어온 달여 먹는 ‘한약’과는 개념부터 다르다”는 입장이다. 즉, 의약품으로서 의사의 처방범위에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한방특위)는 “식물에서 유래된 약은 다 한약이라는 논리는 억지”라며 한의학계의 주장을 반박하고 “천연물신약이 출시 된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문제를 삼는 것은 억지며 의사들의 현대의약품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려는 음모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방특위는 한의사들이 의사들의 고유영역인 전문의약품 및 일반의약품 처방에 관여하는 것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행위이며 한의사 자신들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의학계를 향해 “현대의료기기의 불법사용, 불법적인 천연물신약 처방권 요구 등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한방행위 중 안전성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는 행위나 한약에 대한 교정이 더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 명확한 결론 내기 어려워
한의학계는 “잘못된 천연물신약 정책으로 제약회사의 배만 불리고 있다”며 정부에 천연물신약 관련 정책 전면 재수립과 천연물신약 임상·품목허가 중지, 양의사 처방 금지, 독립한의약법 제정, 한의약청 신설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양의학계는 “집단행동에 밀려 천연물신약 처방권 요구를 수용한다면 현재 이원화된 한국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상이며 직능단체 간 연쇄갈등을 심화시키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의학계와 양의학계는 첨예한 다툼을 계속하면서 현재 보건복지부에 처방권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한 상태이다. 그러나 복지부에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0여년의 세월동안 제약사의 천연물신약 개발과 함께 의사의 처방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한의사의 손을 들어주기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식약청 국감현장에서도 의원들이 “천연물신약의 개념이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왜곡돼 있다”고 지적했지만 식약청은 자신들은 약품 안전성만을 판단하는 기관이란 답변으로 회피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지난 6월부터 한의사 및 의사들과 논의를 갖고 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면서 “논의에 대한 결과물이 언제쯤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짧게 답했다.
◇ 의사 처방만 보험급여 적용돼
천연물신약이란 화학물질이 아닌 천연물 성분을 이용하여 연구·개발한 의약품으로서 조성성분·효능 등이 새로운 의약품을 말하는데 현재 7개 품목이 식약청의 허가를 받았고 지금도 수십종의 천연물신약이 연구 개발 중에 있다.
이중 5개 품목이 제약업체의 신청으로 보건복지부 고시에 등재되어 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이다. 문제는 이들 품목들이 의사의 처방에 대해서만 보험급여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의학 분야의 축적된 지식이 있었던 덕분”이라며 “그러나 일단 신약으로 개발되면 한의사의 처방은 보험급여가 되지 않아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약과 천연물신약, 생약제제 등의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혼재돼 사용된 것이 논란의 시발점이 됐다. 한약과 관련된 약사법, 의료법 및 각종 고시에서 한약과 생약, 천연물등과 한약제제, 생약제제 등의 개념은 서로 모순되거나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
그 시작은 자료제출의약품 중 생약제제로 허가받은 약물이 천연물신약으로 불리면서 부로 생약제제는 한약제제 사용 근거로 의약품 허가 규정을 면제 받았고, 새 효능을 붙여 천연물신약으로 변화되는 길이 만들어졌다.
결국 개념의 혼재는 천연물에서 약리성분을 추출해 만든 의약품은 천연물신약이라는 정의로 굳어졌다. 즉 한의사들이 그동안 사용해온 한약제제가 약리성분을 추출해 의약품으로 만들면 천연물신약이 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모든 의약품은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약제제는 한의사에게만 처방권이 인정된다. 문제는 천연물신약의 경우 기틀은 한약제제에 두고 있지만 대부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면서 의사도 처방이 가능해졌다. 이 과정에서 한의사와 의사간 직능갈등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천연물신약에 대한 처방권을 두고 의사-한의사간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데 복지부는 너무 여유를 부리고 있다”면서 “국민의 입장에서 천연물신약의 처방권과 보험급여 적용문제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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