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의 신? 사실은 ‘약물’의 신

전성운 / 기사승인 : 2012-10-26 10: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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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복용 ‘파문’ 랜스 암스트롱, 모든 성과 박탈

역대 사상 최고의 스포츠 약물 스캔들이 터졌다.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 경주 대회 ‘투르 드 프랑스’를 7년 연속으로 석권한 기록을 보유한 ‘사이클의 신’ 랜스 암스트롱에 대해 국제사이클연맹(UCI)은 약물복용(도핑) 혐의를 인정, 그동안의 우승 타이틀을 박탈과 종신 경기 참가 금지령을 내렸다. 연맹의 이 결정으로 투르 드 프랑스 조직위원회 역시 공식적으로 성적 기록 원부에서 암스트롱의 이름을 지워 그의 1999~2005년 연속 우승 사실을 삭제할 수 있게 됐다.


국제사이클연맹(UCI)은 22일(현지시간) 선수 시절 도핑 사실이 적발된 ‘사이클 신’ 랜스 암스트롱에 대해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거머쥔 7개 타이틀을 박탈하고 영구 제명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반도핑기구(USADA)가 암스트롱의 도핑 혐의를 입증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데 뒤이은 것이다.


연맹은 “암스트롱의 도핑 혐의에 대한 USADA의 보고서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같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팻 맥케이드 연맹 회장은 “암스트롱은 사이클계에 더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며 ‘잊혀져야 하는 존재’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투르 드 프랑스 조직위원회의 크리스티앙 프뤼동 사무총장은 앞서 “조직위는 연맹이 결정하는 대로 따를 것”이라고 말해왔다. 만약 절차대로 암스트롱의 이름이 지워질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식 승자는 없게 된다.


여기에 암스트롱은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딴 동메달도 박탈당하는 등 추가 제재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후원사나 미국 정부와의 법적 분쟁에 휘말릴 것으로도 예상된다.


◇ 인간승리의 상징에서 몰락
암스트롱은 투르 드 프랑스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사이클계의 전설이자 신과 같은 존재다. 특히 그는 지난 1996년 생존율이 50% 이하로 알려진 ‘고환암’이 폐와 뇌까지 퍼졌다는 사실상의 ‘시한부’ 진단을 받았으나, 이를 극복해 ‘인간 승리’라는 찬사도 받아왔다.


이후 그는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사이클링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1997년 암 환자들을 위한 자선단체 ‘리브스트롱’을 설립, 지금까지 5억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그러나 암스트롱의 뛰어난 성과 뒤에는 도핑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1999년 도핑 검사에서 소량의 금지약물이 검출됐으나 상처 치료용 약물에 포함된 것이었다고 반박하면서 혐의를 피해갔다.


이후에도 의혹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난 2010년 팀 동료였던 플로이드 랜디스가 “나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금지된 약물을 복용해왔고 암스트롱 역시 복용했다”고 폭로하면서 결국 그의 거짓 인생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 역사상 가장 놀라운 ‘도핑’
결정타는 지난 10일 USADA가 내놓은 보고서로, 이들은 보고서를 통해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에 빛나는 랜스 암스트롱이 사실은 프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팀 도핑을 했다”고 밝혔다. 전직 팀원 11명의 새로운 증언이 포함된 수천쪽의 방대한 보고서는 ‘의혹’을 ‘사실’로 확신시키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앞서 지난 8월 USADA는 암스트롱이 1998년 이후 쌓은 모든 수상 기록을 삭제했으며, 앞으로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물론 사이클 코치 활동도 금지했다. 이에 대해 연맹은 이의를 제기 했고 이번 보고서는 그에 대한 답변이다. 약 1000여장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동료들의 증언과 혈액 검사 결과 등 암스트롱의 도핑 증거가 담겨있다.


트래비스 타이거트 USADA 회장은 이 보고서를 발표하며 “암스트롱의 소속팀인 US포스탈(미국우정공사)의 도핑 프로그램은 놀라울 정도”라며 “이들은 스포츠계 역사상 가장 치밀하고 전문적이며 성공적인 도핑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암스트롱이 이끌었던 사이클링 팀원들 모두 “금지된 약물을 복용했다”고 고백했다. 팀원이었던 라이파이머는 “사이클에서 도핑은 무척 뿌리 깊은 문화로 경기에서 엄연히 경쟁자인 다른 팀원들도 도핑에 협조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암스트롱의 주도하에 조직적으로 도핑이 이뤄졌다는 증거들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암스트롱이 주치의와 약물 밀수업자 등 팀 안팎의 인맥을 활용해 도핑을 했다”고 설명했다.


USADA는 암스트롱이 개인적으로 약물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팀 내 도핑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 또한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암스트롱은 팀원들에게 “훈련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도핑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으면 교체된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이거트 회장은 “본 보고서가 도핑을 새롭게 조명하고 궁극적으로 사이클링 문화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작성됐다”며 “도핑을 하지 않으면 스포츠에서 상위 레벨까지 올라가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많은 선수들이 안고 있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 USADA “비리 전면 조사 필요”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이클링 팀의 성공 이면에 도핑 의혹이 있는지 수년간 조사를 벌인 USADA의 집념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국제 사이클계에 만연한 약물복용 비리를 전면 조사하기 위한 독립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이는 이들의 보고서 발표 이후 연맹이 암스트롱의 도핑혐의를 인정, 그를 제명하고 모든 타이틀을 박탈하며 모든 기록에서 이름을 삭제할 것을 결정한 후 나온 발언이다.


타이거트 회장은 22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독립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해 사이클계가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연맹의 결정에 대해서도 사이클계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전면적인 비리 조사를 주장했다.


타이거트 회장은 “숨겨진 도핑 혐의는 밝혀진 것보다 훨씬 더 많다”면서 “도핑과 관련된 의사, 부패한 코치 등의 범죄 은폐 고리가 완전히 깨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를 장악하려는 시스템과의 전쟁을 위해서는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번 사건 이후 사이클계에선 연맹이 도핑 적발시스템을 일부러 허술하게 만들어 일부 선수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놨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파운드 전 세계반도핑기구(WADA) 회장 역시 “UCI는 세계적인 팀의 선수들은 미리 정보를 받아 적발되지 않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운영해왔다”고 비판했다.


1999~2007년에 WADA 회장을 지낸 그는 “이런 대대적인 도핑에 대해 몰랐다는 연맹의 주장은 믿을만하지 못하다”며 “당시 UCI의 도핑 적발시스템에 대해 여러 번 불만을 제기했으나 모두 무시당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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