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박진호 기자] 정치권에서 산업계의 임금인상을 독촉하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발단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이었다.
최 부총리는 지난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포럼 강연에 나서서 우리나라가 기업 소득은 늘고 있는 반면 가계소득이 늘고 있지 않다며,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임금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이에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 부총리의 발언에 여야 정치권은 환영의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서민 증세-부자 감세’ 논란의 중심에 있던 새누리당은 재보선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는 카드라고 판단한 듯 적극적으로 최저임금의 인상을 주장하고 나섰다.
유승민 원내대표 역시 최 부총리의 의견을 거들며 당 회의에서 디플레이션 극복과 양극화 해소의 방안으로 최저임금을 인상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최소 6000원 대, 7%선까지는 인상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 부총리가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을 연간 약 7%씩 올렸다”고 발언한 것에 기준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 역시 반대의 이유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최 부총리의 발언이 바로 현실화 될 수 있도록 법제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대표는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가계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내수가 늘어서 결국 혜택이 기업에 돌아간다”며 최 부총리의 최저임금 인상 방안에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문 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노동기구(ILO),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와 미국·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경제활성화 방안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새정치연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최저임금법 법안을 발의한 상태라고 말하고 법 개정 논의에 즉각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최저임금을 전체 근로자 평균의 5-% 이상으로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최 부총리의 최저임금 인상 발언은 현재 우리 경제가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재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임금을 올릴 여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력 자체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기업 소득이 늘고 있다는 최 부총리의 주장과도 배치된다.
지난 해 세 분기 연속 어닝 쇼크를 경험했던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9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전자의 임금 동결 속에 삼성SDS,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 계열사들도 일제히 임금 동결을 결정했다. 심지어 지난 해 경영난을 겪었던 삼성엔지니어링은 사장 및 임원 57명이 지난달 급여를 반납하기도 했다.
임금 동결에 나선 것은 삼성뿐이 아니다. 저유가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정유업계 역시 임금동결을 결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역시 지난 5일 올해 임금 인상률을 1.6% 안에서 조정하라는 권고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루 전 나온 최 부총리의 발언과 극과 극을 달리는 의견이다. 지난 해 2.3%의 임금 인상률 권고안을 내놓았던 경총은 국민경제생산성을 고려해 지난해보다 더 낮은 수준의 인상률을 제안했다.
특히 이번 권고안에는 통상임금과 60세 정년의무화 등 바뀐 제도로 인한 자연 인상분도 포함하고 있어 ‘1.6%의 인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동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경총은 무려 4000여 회원사를 거느리고 있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방침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적용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SK그룹과 CJ그룹 등 본격적인 임금 협상이 시작되지 않은 기업 집단들과 강경 노조가 버티고 있는 현대차 그룹 등은 정부와 경제단체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어 오히려 상당한 혼란이 빗어지고 역대 가장 혼란스러운 춘투(春鬪)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보다 어려운 입장에 놓인 중소기업들은 이러한 정부와 재계의 엇박자 속에 더욱 어려운 노사환경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지난 2007년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최저임금 적용 후 아파트 경비원의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졌던 전례를 언급하며 “기업의 수입이 늘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 지출을 늘리면 결과적으로 직원을 줄일 수 밖에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공염불이 된 박근혜 정부가 출범 당시 강조했던 ‘창조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고용문제마저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임금 인상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달 말로 예정된 노동시장 구조개편 협상 시한을 앞두고 노동계를 구슬리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의혹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은 지난해보다 약 7% 인상됐다. 시급 기준으로 7.1% (370원) 오른 5580원이며, 8시간을 기준으로 한 일급으로는 4만 4640원, 월급으로는 116만 6220원(월 209시간 사업장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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