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문제남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실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그는 당연히 판결에 반발하며 앞으로도 정치적 개입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실형을 선고한 ‘사법부’를 개혁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사실 그에게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어마어마한 부자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은 지난달 26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6) 전 총리에 대해 그의 소유인 상업방송망 미디어셋의 중계권 구매와 관련한 조세포탈 혐의를 인정,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교도소 과잉수용을 줄이고자 2006년 도입된 사면법에 따라 판결 직후 형량이 1년형으로 감형선고됐다.
이탈리아 검찰에 따르면 미디어계 거물인 베를루스코니 등 피고인 11명은 미국 영화를 베를루스코니의 개인 TV네트워크에서 방송하기위한 판권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해외 업체들을 통한 것으로 꾸며 세금을 탈루했다.
이날 베를루스코니 이외에 조세포탈 혐의 관련자 11명이 함께 재판을 받았으며 모두 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앞서 검찰은 베를루스코니에게 징역 3년8개월을 구형했다. 법원은 “베를루스코니는 다른 관련 피고인들과 함께 세무당국에 1000만 유로(129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명령했으며 “5년 동안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탈리아 사법체계에서는 최소 한 단계 항소를 거친 이후에만 유죄가 확정되기 때문에 베를루스코니는 즉각 수감되지 않고 항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를루스코니는 이날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으며 그의 변호인들은 성명을 통해 “믿을 수 없는 판결”이라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 “사법 체계 뜯어 고칠 것”
전형적인 ‘억만장자’스럽게 그는 오랜 기간 사법당국과 불편한 사이로 지내며 판사들을 향해 좌파적이라 공격해온 바 있다. 작년 5월 프랑스 도빌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이탈리아 판사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해 오바마 대통령의 어이를 상실하게 만든 전력이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정상회담이 잠시 멈춘 사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다가가 뜬금없이 “이탈리아에는 좌파판사들의 독재가 있어 정부가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광경이 이탈리아 TV방송을 통해 보도되면서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이번에도 사법부에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판결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 자택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내가 당한 일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사법부 개혁을 최우선 순위에 놓겠다”며 “사법 체계를 뜯어고치기 위한 ‘행동’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자신이 소유한 미디어셋 TV방송을 통해서도 “이탈리아를 살 수 없게 만들고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로 만든 정치적 판사가 내린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불편부당한 판사에 의지할 수 없는 나라라면 그 나라는 무례하고 야만적이며 살 수 없는 곳으로 민주주의이기를 중단한 나라”라며 “슬프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상황이 그런 식”이라고 말했다.
또 정치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했다. 그는 “나를 총리 후보로 올리려는 의도는 아니다”라며 총리 자리에 도전하지는 않겠다고 밝혔으나 실질적으로 그가 이끄는 이탈리아 자유국민당(PDL)을 통해 마리오 몬티 현 총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한편, 그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비난했다. 그는 메르켈 총리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내 국제적 신뢰도에 대해 정치적 암살을 행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그는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독일 정부가 ‘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았던’ 결정을 수용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 반성 따윈 않는 ‘뻔뻔함’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총리를 3번이나 지내며 거의 20년 가까이 이탈리아 정계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붕가붕가 파티 스캔들’로 유명한 미성년자 성매수 사건 이후 그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고 유럽 재정위기 압박 등으로 작년 11월 총리에서 쫓겨나 지금 이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그의 재산은 여전히 건재하다.
앞서 그는 자신에 대한 다수의 형사사건 기소에 대해 자신을 `검찰의 희생양'이라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지금까지 그에 대한 부패 혐의 관련 기소들은 무죄나 공소 시효 만료로 결론이 났다.
억만장자인 베를루스코니는 1997년 회계부정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조세포탈과 부정부패 혐의 등에 대한 재판은 총리 면책법 통과로 중단된 바 있으며 이후 무죄 판결을 받거나 공소시효 소멸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거의 6년 동안 이어진 이번 재판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징역형’을 받았다. 미성년 관련 성추문 재판은 현재 같은 밀라노 법원에서 진행 중이고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조카라고 주장하는 17세 여성을 풀어주라고 경찰에 압력을 행사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 ‘사법독립’은 중요하다
건설재벌로 출발해 미디어를 장악, 정치권 진입, 언론통제·여론조작을 거쳐 마침내 법까지 뜯어고쳐 자신을 처벌하지 못하게 만든 베를루스코니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패 정치인의 귀감이 될 만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경제는 추락했고, 방송은 극단적인 선정성만을 내세우며 상업적으로 변화, 공영방송의 몰락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의 친족들은 각계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사실상 그는 ‘고인 권력’의 표본이다. 물론 뭐든지 고이면 썩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갖는다. ‘사장님’이 정치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엔 ‘올바름(正)’은 없었다.
마침내 이탈리아 사법부는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사법 절차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구속·수감되려면 3심에서 징역형이 확정돼야 하는데다 항소 과정이 수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실제로 교도소에서 형기를 보낼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왜 ‘사법독립’이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르면 내년, 우리도 비슷한 것을 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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