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존 위기가 장기화 추세를 보이고 있고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에 발맞추기 위해 호주 정부는 정책 백서를 발간하고 2025년까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25가지 주요목표를 설정, 이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예산문제와 시기 등을 지적 받으며 현실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지난달 28일 시드니의 로위 국제정책연구소에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정책 전환을 골자로 한 백서 ‘아시아 시대의 호주’를 발표했다. 호주는 312쪽으로 작성된 백서를 통해 한국·중국·인도·인도네시아·일본 등 아시아 5개국과 미국을 호주의 교역과 안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6대 전략 파트너 국가로 명시했다.
이는 그동안 국가 전략의 중심을 미국과 영국 등 구미에 주로 의존하던 생존전략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는 정책 대전환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21세기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지만 여전히 세계를 주도하는 패권국가 미국의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는 호주 정부의 전략적 판단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호주는 200대 기업의 이사회 멤버 3분의 1과 연방정부 기관의 고위급 관료 3분의 1이 ‘아시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도록 한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모든 호주의 어린이들이 아시아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2025년까지 달성할 25개의 주요 목표를 선정했다.
주요 목표에는 1인당 국민소득을 7만3천 달러로 끌어올리고, 호주의 학교 시스템을 ‘글로벌 톱5’ 수준으로 향상시키며, 10개의 호주 대학이 세계 대학 순위 100위 안에 진입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이밖에 1인당 GDP 글로벌 톱10 진입, 사업하기 편한 나라 순위 글로벌 톱5, 모든 학생들이 중국어·힌두어·인도네시아어· 일본어 등 주요 아시아 언어 습득, 아시아 지역 주재 외교관 증강 등도 주요 목표로 제시됐다. 2025년까지 아시아와의 교역 비중을 현재의 25%에서 3분의 1까지 늘린다는 계획도 밝혔다.
길라드 총리는 이날 “앞으로 21세기의 상황이 어찌됐건 아시아가 세계의 지도적 위치에 서는 것에 의문이 없다. 그 과정은 멈출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속되고 있다”며 “호주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으로부터 이익을 보면서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도 무역과 투자를 늘리기 좋은 위치”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정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시아의 관광붐을 언급했으며 현재 호주에서 활기를 띄고 있는 광업과 관련해 아시아의 천연 광물 자원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을 지적했다. 또 아시아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낮출 것이라고 밝혔으나 외국 투자에 대한 호주의 까다로운 심사규정을 변경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길라드 총리는 “향후 10년간 호주가 이룩할 번영과 부는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의 번영에 의해 부양될 것”이라며 “현재 호주의 유치원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아시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구체적 언급 없는 막연한 목표일뿐
그러나 이러한 호주 정부당국의 발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현실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전혀 없는 막연한 목표 나열”이라는 지적이다. 정책 전문가들도 “제시된 내용은 그럴 듯하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막대한 예산과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며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표시했다.
가령 모든 호주 학생들이 중국어·인도네시아어·힌두어·일본어 등 핵심 4개 아시아 언어를 배우도록 한다는 목표는 해당 외국어를 가르칠 교사 확보가 전제돼야 하지만 당장 그 많은 아시아 언어 교사를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교사를 추가로 채용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 역시 문제다. 현재 호주 정부는 흑자재정 달성 목표를 맞추기가 어려워 출산수당 지급을 축소하고 비자신청 수수료를 인상하는 등 예산 부족으로 헉헉대고 있다. 아시아 각국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 주재 외교관을 증원한다는 목표 또한 예산 문제로 현실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시드니대 아시아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인 에이드리언 비커스 교수는 “백서가 지향하는 목표는 바람직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비커스 교수는 인도네시아어를 예로 들며 “최근 일부 대학에서 인도네시아어 강좌를 개설했으나 관련 예산 부족과 학생들의 외면으로 폐강됐다”며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아시아 시대는 이미 시작돼 진행되고 있는데, 정부의 백서 발표가 뒤늦은 감이 있다”고 꼬집었다.
호주 연방의회 외교위원회의 닉 챔피언 위원장은 “지난 30년간 호주 외교부는 만성적인 예산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아시아 주재 외교관을 증강하려면 그에 필요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논의가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야당도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재원 확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단 점을 문제로 삼았다. 토니 애보트 자유당 대표는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전혀 없는 막연한 목표 나열은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한편 이에 대해 중국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중국 외교부 홍뢰 대변인은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평화 추구와 발전 모색, 협력 촉진은 시대의 흐름”이라며 “(백서는) 아태지역 국가의 공동이익에 부합된다”고 밝혔다. 그는 백서가 아시아인들의 상호이해와 신임, 협력을 증진과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을 수호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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