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탈루도 ‘세계화 시대’

전성운 / 기사승인 : 2012-11-16 13: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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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알아도 못 잡아…규제는 ‘거북이걸음’

기업들의 절세 또는 세금 탈루 방식이 ‘세계화’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인터넷 발달에 따른 전자상거래 등은 여기에 날개를 달아줬으나 기존 제도와 각국의 규제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되는 경제 불황 속에 국제사회가 드디어 기업들의 ‘합법적 탈세’에 규제의 칼을 뽑아들기로 결심했다.


영국과 독일은 5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이른바 ‘역외 탈세’ 방지를 위한 국제 공조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한계와 무력증을 극복하기 위해 이제라도 국제 공조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양국의 제안이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다국적 기업들의 ‘절세’ 또는 편법적 세금 탈루는 주로 이전가격조작을 통해 이뤄진다. 세율이 높은 나라의 법인에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각종 사업비용을 떠넘기고 이익은 세율이 낮은 곳에 설립한 서류상 법인에 몰아 줘 세금을 줄이는 방법이다.


여기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가공의 법인, 세율이 매우 낮고 외국자금에 ‘묻지마 유치’를 하는 소위 조세회피지역(조세천국) 등이 동원된다. 한국 기업들도 애용하는 고전적 조세회피 지역인 태평양과 카리브해 지역의 섬나라들과 더불어 최근에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아일랜드 등 유럽 국가들도 자주 활용된다.


네덜란드의 경우 외국기업 법인으로 유입되는 이자와 로열티, 배당금 등에 매우 낮은 또는 무시해도 좋은 수준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법인세가 매우 낮은 아일랜드는 특허료 등 지적 재산권 수입이 많은 기업들에 매력 있는 곳이다. 기업들은 다단계의 내부 회계처리 과정에서 각종 비용 부풀리기나 이익 축소 등 불법과 편법을 동원한다.


◇ 탈세 규모·수법 ‘글로벌화’
전자상거래 확대와 인터넷 기업 발달로 역외 탈세 규모는 기하급수로 커지고 수법도 정교해졌다. 최근엔 단순히 물품 가격을 넘어 경영 노하우, 브랜드 가치, 특허, 소프트웨어 같은 지적 자산을 조세피난처로 옮겨놓고 비용처리를 해 세금을 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애플이 2011회계연도에 미국 밖에서 거둔 수익은 368억 달러에 달한 반면에 낸 세금은 7억1300만 달러로 세율은 1.9%에 불과하다. 애플은 해외 수익을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자회사들을 거쳐 ‘세금 천국’인 카리브 해역으로 돌려 세금을 줄이는‘네덜란드 샌드위치를 곁들인 아이리시 커피 더블’ 기법을 사용했고, 뉴욕 타임스는 “애플은 탈세 기법의 선구자”라고 비난했다.


프랑스 정부는 최근 인터넷 검색시장의 지배자 ‘구글’의 프랑스 법인과 아일랜드 지주회사에 대해 지난 4년간 이전가격을 조작한 혐의로 10억 유로(1조4000억 원)의 세금 추징을 통보했다. AFP통신은 “작년 구글 프랑스 법인 매출은 12억5000만~14억 유로인데 겨우 500만 유로의 세금만 냈다”고 전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이베이는 영국에서 5천만 파운드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이익을 룩셈부르크와 스위스 등에 세운 서류상의 법인(페이퍼 컴퍼니)으로 이전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도 조세회피를 위해 네덜란드 등 여러 곳에 복잡한 구조의 해외 자회사를 만들어 놓고 있다. 네덜란드 일간지 ‘드 페르스’는 페이스북 암스테르담 법인 사무소를 찾아가 보니 텅텅 비어 있고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합법 탈세의 창구임이 틀림없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영국에선 미국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 등의 세금 문제가 중요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14년 동안 30억 파운드의 매출을 낸 스타벅스 영국법인이 낸 세금은 그 1%도 안되는 860만 파운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폭로됐다.


놀랍게도 스타벅스는 최근 3년 동안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투자자들에겐 영국 사업의 수익성이 좋다고 말해왔으나 세무당국엔 이익이 나지 않았다고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주로 이전가격을 조작했다.


네덜란드 경제지 피난시엘레 다그블라트의 보도에 따르면 이른바 남유럽 국가의 거대기업 가운데 60%가 조세회피를 위해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네덜란드에 지주회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세청은 국내 대기업들에 대해 유사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와 세무 전문가들은 사실 이런 거대기업 뿐만 아니라 해외에 사업장이 많은 다른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들에서도 역외 탈세가 적지 않게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업체 등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 기업들 마저 벨기에나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준 조세회피지역에 법인을 둔 것도 기업이나 사주 개인 재산과 관련된 이른바 ‘절세’와 무관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과세 당국의 ‘의지’가 부족하다
각국 세무당국은 때때로 이전가격 조작 등에 대한 조사를 하고 추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런 조치는 자발적으로도 이뤄지지만 시민단체 등의 지속적인 압박에 밀려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불복하고 법원에 제소하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맞지 않는 잣대를 들이댄다고 불평이다.


사실상 각국 당국이 적발, 세금을 추징하는 것은 ‘합법적 절세’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이나 규정을 잘못 적용한 부분 정도에 그치고 있다. 린 호머 영국 국세청장도 의회 청문회에서 “현재로선 다국적 거대기업들의 이 같은 행태를 막는 일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법규에 그만큼 허점이 많고 정책과 세제가 세계화 추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각국이 투자 유치를 위해 외국자본에 대해 경쟁적으로 관대한 정책을 펴는 것도 원인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과세 당국의 의지가 약하다는 비판이다. 영국 시민단체 관계자는 “탈세가 합법적일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악취가 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지 오스번 영국 재무장관은 “오늘날처럼 세계화된 상황에서 어느 한 나라 단독으로 역외 탈세 단속 등을 하긴 어렵다”며 “국가들이 단합해서 행동하는 것만이 특정 국가에 피해를 주지 않고 탈세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영국과 독일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구체적 실행 방안 연구를 의뢰했으며 내년 2월 모스크바에서 열릴 차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보고서가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에서 열린 G20 재무회의에서 밝힌 이번 협력방안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조만간 국제적 공조체제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국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분들이 있는데다 무엇보다 기업, 즉 거대자본들이 이에 거세게 저항해 실효성 있는 조치가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비관론자들은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인 ‘토빈세’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논의만 이뤄지고 실제 국제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점 등을 사례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낙관론자들은 유권자의 힘으로 정부와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소비자의 힘으로 기업에 압박을 가할 경우 적어도 일정 수준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감시와 압박활동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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