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쿠왕국의 역사가 숨 쉬는 곳 ‘슈리성’

박진호 / 기사승인 : 2015-01-14 11: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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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독립국가 ‘류큐왕국’의 중심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박용우 객원기자]일본에 점령당하기 전,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오키나와의 역사에는 ‘류큐왕국(琉球王國)’이 등장한다. 이는 지금도 오키나와 주민들이 주장하고 있는 자신들의 정통성이며 계보를 상징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슈리(首里)는 과거 류큐왕국의 도읍이었고, 슈리성(首里城)은 당시 왕국의 궁전이었다.


일본이 싫은 일본, ‘오키나와’
앞서도 설명했지만 오키나와(沖繩島)는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닌 곳이다.
일본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일본인이라는 소속감도 그다지 높지 않으며, 자신들과 일본 정부의 입장이 다를 경우 바로 독립에 관한 말을 꺼낸다. 독립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가 일본에 강제 복속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피해자’라는 가치관으로 일본을 ‘가해자’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최고의 휴양지이기도 한 오키나와는 지리적인 실제 거리로 따지더라도 일본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일본 가고시마 현(鹿兒島縣)의 한 군으로 아마미 제도(奄美群島)에 위치하고 있는 오시마 군(大島郡)과는 지척에 위치하고 있지만 일본을 구성하는 4개의 큰 섬 중 가장 남쪽섬인 큐슈(九州)의 남단에서 오키나와의 수도 나하(那覇)까지는 직선거리로 600km가 넘게 떨어져있다. 서울에서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縣)까지의 거리보다 멀고,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인 대마도와의 거리에 2배 가까이 된다. 오히려 대만과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는 오키나와는 지리적으로도 어중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근원은 일본이 아닌 류큐
오키나와 주민들은 대부분 일본에 복속된 후 자신들의 삶이 오히려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영토가 된 후 수많은 전쟁을 겪었고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당시에는 일본군의 집단 자결 강요 등으로 오키나와 인구의 20%가 넘는 10만 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군기지 문제로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이 높다. 매우 작은 규모인 오키나와에 일본 미군기지의 75%가 몰려 있는 것에 오키나와는 불만을 갖고 있으며 지난 달 실시된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도 미군기지의 현내 이전을 반대한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후보가 당선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승리를 예상하고 중의원을 해산시킨 후 다시 선거에 돌입하여 예상대로의 성과를 거뒀지만 오키나와에서 아베 총리의 자민당은 완패를 당했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당이 완패를 당한 가운데 오키나와에서는 오나가 지사를 필두로 공산당과 사민당, 생활당, 그리고 무소속 후보가 각 선거구를 차지했다.
미군기지 반대 움직임이 미국과의 관계에도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아베 정권은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弘多) 전 지사의 당선을 아베 총리가 직접 지원하고 나서며 연간 3000억엔의 지원을 약속했고, 아베 정부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선거전에 대거 투입됐지만 참패를 막지 못했다.
전쟁에 민감한 오키나와에서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은 상당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아베 정부의 평화헌법 개헌에도 격렬한 반대의 입장을 보인다. 나아가 일본의 언어 말살정책으로 사라진 오키나와어를 배워야 한다는 움직임과 함께 ‘류큐 민족 독립 종합연구학회’가 창립되는 등 독립을 위한 움직임도 일고 있다.
홍길동전의 그 ‘율도국’
이들이 말하는 류큐는 오키나와의 옛 지명이며 스스로를 류큐민족으로 칭하고 있다.
류큐왕국은 1429년 오키나와에 등장한 통일 왕국이었고 현재 오키나와의 중심도시이자 현청소재지인 나하시의 동부에 있는 슈리를 도읍으로 했다. 류큐왕국은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약소국이었지만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었으며,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로에 위치하고 있어 무역이 번성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1609년부터 일본의 침략으로 지배를 당하기 시작했고 1879년에는 류큐왕조가 일본에 의해 무너지고 오키나와현으로 일본에 복속됐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다.
슈리성은 그러한 류큐왕국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특히 슈리성에 대한 정비기록이 1427년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슈리성은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상 무역의 중심에 있었던 류큐왕국답게 슈리성은 중국과 일본의 양식이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슈리성의 정문인 ‘슈레이몬(守禮門)’은 중국의 영향이 강한 것으로 보여 지면서도 류큐왕국의 독창적인 기법이 남아있는 유적으로 꼽히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소실되었던 ‘슈레이몬’은 1958년에 복원되었다.
류큐왕국의 유적은 구수쿠(御城) 유적과 함께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이 류큐였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동북아의 성(城), 열대를 만나다
‘슈레이몬’을 지나 슈리성을 올라가다보면 좌측에 자리 잡고 있는 ‘소노햔-우타키 석문(園比屋武御嶽石門)’을 볼 수 있다. 류큐지방의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이 석문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과거 류큐왕국의 왕들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 문에서 안전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를지나 계속 내부로 들어가면 슈리성의 제1관문인 ‘칸카이몬(歓会門)’을 지나게 된다. 이 뒤에도 성 내부에는 ‘즈세이몬(瑞泉門)’, ‘로코쿠몬(漏刻門)’, ‘코후쿠몬(広福門)’등이 버티고 있다. 마지막 관문인 ‘호우신몬(奉神門)’을 지나면 요금을 내고 입장해야 하는 ‘유료 구간’이다. 입장료는 800엔. 내부에는 ‘호쿠덴(北殿)’, ‘세이덴(正殿)’, ‘난덴/반도코로(南殿/番所)’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아시아’와 ‘열대’라는 말을 연결시키는 데 어색함이 있는 우리나라 방문객들에게 이곳은 동북아의 특성이 묻어나는 성곽에 열대를 상징하는 야자수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이국적인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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