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오히려 다시금 대형 유통업체와 소상공인들이 정면충돌할 모양새다. 앞서 이들은 지식경제부의 권고로 대중소유통단체들의 모임인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결성, 상생안 마련을 통해 해묵은 갈등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이번 법안 통과가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사실상 합의가 무의미해 졌기 때문이다.

체인스토어협회는 성명을 내고 영업시간 제한과 신규 점포 출점 금지를 골자로 한 국회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이에 대해 소상공인 단체인 전국상인연합회는 긴급 이사회를 열고 유통산업발전협의회에 불참을 결정했다. 대형유통업체가 중심이 된 체인스토어협회와 중소상인단체간 싸움은 결국 유통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전쟁이다.
지난 1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전체회의를 통해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 제한 강화, 의무휴업일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현재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이은 실적부진에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실적 개선 가능성이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업계가 자율적으로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이를 차치하고 강제 카드를 들이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통해 중소상인과 상생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며 “정치권에서 뜬금없이 법안으로 강제하겠다고 압박하고 나선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체인스토어협회는 지경위 개정안 처리 시 업체들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협회에 따르면 영업시간 제한을 현행 자정~오전 8시에서 오후 10시~오전 10시까지로 4시간, 의무휴업일도 3일로 확대할 경우 기업형슈퍼마켓(SSM)의 매출 감소는 연간 8620억원, 대형마트는 6조9860억원에 달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전체 유통기업의 매출 감소는 8조원에 가깝게 된다는 것이다. 협회 측은 또 “이 중 약 1조5696억원이 농축수산물 분야에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농민들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기업들의 손해로 인한 물가인상과 생계형 근로자의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도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헀다.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내수 위축으로 기업들이 일자리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모든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지경부가 발표한 주요 유통업체 월별 매출동향에 따르면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의 매출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추석 '반짝 특수'를 끝으로 이번 달부터 다시 매출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계속된 소비심리 위축으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대형마트 죽이기와 다름없다. 대기업만 공격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성 법안”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에 반해 전국상인연합회는 “그동안 우리가 지적한 부분을 보완 강화한 규제 내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올해 안으로 본회의를 통과해 빠른 시일 내에 시행될 수 있도록 국회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전했다.
◇ 국회, 지경부 뒷통수 ‘강타’
직접 유통업체 대표들을 불러 모아 유통업계의 자율적인 상생방안을 모색하려던 지식경제부 홍석우 장관은 입장이 머쓱해졌다. 지경부 주관으로 모인 유통업체 대표들이 추진하던 방안보다 더 강력한 법안이 통과돼 협의회의 설립 의도가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지경부는 지난 10월 법에 따른 강제 규정을 배제하고 강제휴무, 출점자제 등을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출범시켰고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지난 15일 정부와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중소유통업체 대표들을 불러 첫 회의를 열었다.
이날 협의회에선 매월 2회 의무휴업, 인구 30만 이하 도시의 대형마트 출점 자제, 10만 이하 인구의 SSM 출점 자제, 대형마트에 대한 지자체의 소송 철회 등 굵직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 다음 달에 열릴 두 번째 회의 날짜까지 잡아놓는 등 의욕을 불태웠다.
강제성 없는 협의회의 실효성 논란도 있었지만 일단 자율상생의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는 점에서 약소하게나마 의미를 부여받았다. 정재훈 지경부 산업경제실장은 “협의회의 자율성이 침해받는다면 사후에도 입법조치가 가능하다. 규제보다 강한 성과를 낼 수 있다”며 협의회 운영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홍석우 장관의 의지는 하루 만에 힘을 잃게 됐다. 바로 다음날 국회 지경위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기존 2일에서 3일로 늘리고, 밤 10시 이후 영업을 제한하기로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 협의회, 사실상 해체
유통산업발전협의회는 일단 해체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 주 내로 유통법 개정안이 법사위와 본회의까지 통과될 경우 사실상 유통산업발전협의회는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협의회 주체중 하나인 전국상인연합회는 개정안 통과 이후 지난 19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협의회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상인연합회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자율규제 내용은 상생의 의미가 없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진정성이 없는 구성원들과 협의회를 함께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항의 수위도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개정안 통과와 관계없이 ‘유통산업발전협의회’의 파국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불과 며칠 전 대형마트 대표주자인 홈플러스의 꼼수가 딱 걸려 중소상인들을 분개시켰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22일 오산시에 대규모점포 개설 등록을 신청 했다. 이날은 홈플러스가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유통업계와 함께 자발적으로 신규 출점 자제를 골자로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힌 당일이다. 앞으로는 자율 상생을 합의하면서 뒤로는 신규 점포 설립을 추진한 것이다.
이미 투자한 점포는 원칙적 예외라지만 지경부가 발표한 내용을 기준으로 하면 대형마트 출점 자제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기 투자 점포라도 실제 개설에 관해서는 중소상인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지식경제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소상인들은 협의회에 대해 “정치권의 강제조치를 막아내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며 “법안 개정에 강력반발해 후속조치를 강구하려는 것 역시 이번 사안을 회피하려는 소나기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중소상인들이 대형마트에 대해 더 이상 신뢰를 갖긴 어렵다. 상생을 공언하고도 물밑에선 전국 각지에 점포 개설준비를 진행하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홈플러스 덕분에 대형마트와 중소상인들 간에 다시금 전쟁의 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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