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정리해고의 광풍이 몰아닥친 지 3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무엇하나 온전히 복원 된 것 없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는 암담한 현실적 고통만을 안기고 있습니다. 회사가 정상화 되면 다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한 식구로 지내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국회가 국민 앞에 당당히 서겠다면, 더 늦기 전에 청문회에 이은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2012년 11월 20일 철탑 농성에 돌입하며, 한상균·문기주·복기성.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 노조원 3명이 해고 노동자 복직 등 쌍용차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무기한 송전탑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20일 한상균(51) 전 지부장, 문기주(53) 정비 지회장, 복기성(36)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은 이 날 오전 4시께 평택공장 정문에서 약 300m 떨어진 송전탑에 올랐다. 땅에서부터 높이 30m 중간지점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나무판자 2장을 걸쳐 공간을 만들고 농성에 돌입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15만 볼트의 전류가 흘러가는 고압송전탑 뿐이다.
이들이 오른 송전탑에는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해고자 복직’이라고 쓴 3m 길이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쌍용차 노조원들은 노조간부 3명이 오른 송전탑 밑에서 밧줄을 이용해 김밥과 물 등 생필품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쌍용차 정리해고에 관한 국정조사 결의와 해고자 복직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중인 문 정비 지회장은 “9월 청문회에서 쌍용차사태가 기획부도, 회계조작으로 인한 문제라고 밝혀졌는데도 국정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며 “국정조사 계획이 나올 때까지 결코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에 현장 주변에 병력을 배치하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또 소방서는 이들이 올라간 송전탑 밑에 매트리스를 설치하고, 주변에 사다리차와 소방차를 배치했다. “공권력 투입이 우려된다”며 떨어져 있어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경찰과 소방서는 송전탑에서 약 3m 떨어진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다.
김남섭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9월 청문회에서 기획부도, 고의적 회계조작 등이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정치권이 국정조사에 대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농성에 돌입하게 됐다”며 “문제에 대한 가시적인 움직임이 보이기 전까지 노조원들은 철탑을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여전히 문제 해결될 기미 보이지 않아”
앞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관련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41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던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 19일 건강악화로 오후 병원으로 옮겨진 것이 이들이 송전탑을 오르게 한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금속노조 등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서울 중구 대한문 농성장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철회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 물과 효소만 먹고 버텨왔던 김 지부장은 이날 오후 3시50분께 건강악화로 녹색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전날 오후부터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김 지부장을 걱정한 쌍용차지부가 119에 연락해 취해진 조치다.
송전탑에서 농성중인 쌍용차지부 한상균 전 지부장은 “41일째 단식농성을 하던 김정우 지부장이 건강 악화로 병원에 옮겨졌고 지금까지 스무 명이 넘는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뭐라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철탑에 오른 이유를 밝혔다.
쌍용차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작가 공지영의 책 <의자놀이>가 대중의 관심을 끌며 지난 9월 20일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와 관련한 청문회를 이끌어 냈고 한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당시 청문회에서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쌍용차 사태에 대해 ‘사회적 야만행위’로 규정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 냈다. 청문회 자리에서는 정리해고는 회계법인의 서류조작으로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제기 됐고 노조 파업에 대한 야만적인 진압행위를 했던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증인들이 불출석하고 여야 간 정쟁으로 왜곡될 위험이 큰 만큼 이를 상설 특별위원회 혹은 국정조사에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그 후 대선 이슈에 밀려 흐지부지 됐다.
◇ 해답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참여연대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다수 국민들이 분노하고 정리해고자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있지만 정작 이 사태를 풀어나가야 할 주체들은 묵묵부답인 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참여연대는 22일 성명을 내고 “대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민생을 챙기겠다고 하며 쌍용자동차 농성장을 찾았던 정치인과 후보들은 과연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여야 정당은 국정조사를 실시하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의 책임을 분명히 묻고 해고자 복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함께 살자 농성촌’도 논평을 내고 정치권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송전탑 농성에 답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입에 발린 헛공약을 남발하기 전에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에 대한 책임 있는 응답부터 제시하라”고 외쳤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역시 지지 선언을 통해 송전탑에 오른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민교협 상임의장인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경향신문에 낸 기고문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쌍용자동차는 회계조작을 하여 2646명을 정리해고했고, 이에 항의하는 이들에게 국가는 적에게나 행하는 폭력을 휘둘렀다”며 “실제로 그들 중 절반이 전후 병사들이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과 생계위기, 절망감 속에서 벌써 23명이 죽었다”고 말했다.
◇ 쌍용차, 억울하면 조사 받으라
앞서 지난 10월 29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쌍용자동차 사태 특별조사단’을 결성, 지난 7월부터 조사한 결과를 담은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날 오욱환 회장은 23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국가와 사회의 장기간 외면’을 들었다.
그는 “국가와 사회는 무려 3년 이상 방치하면서 이들 노동자들에 대해 국민과 사회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관심과 배려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쌍용차는 바로 다음날 “노동계와 일부 정치권을 비롯해 서울지방변호사회까지 제기하고 있는 제반 의혹은 청문회 및 국정감사 등을 통해 밝힌 사실과는 무관한 추측과 오해”라고 주장했다.
그래,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사측 입장에서도 다소 억울할 수 있다. 그래서 ‘조사’를 하자는 것이 노동계의 요구다. “쌍용차는 억울하다면서 한사코 국정조사는 피하려 하고 있다. 이는 크나큰 모순”이라고 한 노동분야 전문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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