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의 올해 연말 임원인사는 큰 폭의 인적쇄신이 이뤄질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불확실한 내년 세계 경기를 감안해 조직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탁월한 성과를 창출한 임원들은 예외 없이 승진됐다.
특히 고졸 출신으로 LG 세탁기를 세계 1등으로 이끄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조성진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핵심 사업부인 HA사업본부장으로 선임한 것이 대표적이다. LG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고졸 출신이 최고경영자(CEO)까지 승진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LG전자는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고 사장 2명, 부사장 3명, 전무 7명, 상무 26명 등 총 38명의 임원 승진을 확정했다. 올해 승진자는 작년의 43명보다는 5명 적지만 2009년, 2010년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작년에 사장과 부사장 승진이 각 1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부사장급 이상 승진자는 올해가 더 많다.
LG전자는 이번 인사를 철저히 시장선도 성과를 기준으로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1976년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입사해 세탁기 사업에 매진, LG전자 세탁기를 세계 1등으로 이끈 조성진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해 HA(Home Appliance) 사업본부장을 맡는다. 고졸 출신이 대기업의 사장에 오른 것은 흔치 않은 일로 LG전자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조 부사장은 1976년 용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LG전자 전기설계실에 입사한 고졸 엔지니어 출신으로 2005년 세탁기사업부장에 발령 나기 전까지 약 30년 동안 세탁기 설계연구 분야에 몸담은 대표적인 세탁기 전문가다
그는 특히 1998년 다이렉트드라이브(DD) 기술을 개발한 주역으로 LG전자는 당시 개발한 DD기술을 아직까지 LG 세탁기의 대표 기술로 내세우고 있다. 조 부사장은 세탁기사업부장을 맡은 이후 미국에서 5년 연속 드럼세탁기 분야 1위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 추구
이번 LG그룹 인사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꾀한 흔적이다. 특히 큰 폭의 쇄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던 핵심 계열사 LG전자마저 경질성 인사는 거의 없었다. 이는 구본무 회장의 ‘성과주의’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구본무식 성과주의는 이미 오래 전 예견된 것으로, 구 회장은 지난 9월 예정에 없던 임시 임원 세미나를 열어 “시장선도를 위해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모든 임원들은 시장선도 성과로 평가하겠다”고 불호령을 내리면서 강도 높은 변화를 촉구했다. 그리고 그때의 불호령이 이번 인사에 반영됐다.
LG의 한 임원은 “시장선도 제품에 대한 업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임원평가 방식은 올해 시범적으로 실시됐다”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제도가 적용되게 되면 성과에 기반한 보다 엄격한 인사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년동안 HA사업본부를 이끌어 온 신문범 부사장도 사장이 됐다. 그는 중국법인장으로 옮겨 ‘중국사업 강화’에 나선다. 중국은 거대한 규모를 갖춘 매력적인 시장인 동시에 현지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는 녹록치 않은 시장이라는 점에서 신 사장이 중책을 맡게 됐다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전무 2년차로 세계최대용량 냉장고를 출시한 박영일 전무는 부사장으로 발탁됐으며, HE(Home Entertainment) 사업본부에서 신사업 발굴과 사업화에 기여한 외국인 짐 클레이튼 전무도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란 경제제재라는 어려움에도 현지 파트너와의 관계 강화 등으로 연평균 17%의 매출 성장을 이끌어 온 이란법인장 김종훈 상무는 상무 2년차에 전무로 조기 발탁됐고, 스마트 TV 핵심칩을 개발한 최승종 상무 등은 전무가 됐다.
LG는 이번 인사로 사장단이 모두 유임하면서 사장단 평균 연령(57.6세)도 지난해(56.8세)보다 더 높아졌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시장선도라는 과제를 푸는 게 핵심인데 올해 하반기 들어 그런 조짐이 차츰 보였다는 것이 회장의 판단”이라면서 “내년에 한 번 더 신임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연구개발(R&D) 분야의 핵심 인력에 대한 중용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LG전자는 북미 모바일TV 표준화를 주도한 곽국연 수석연구위원이 부사장급 수석연구위원으로 승진, 연구에만 몰두해 온 수석연구위원 중에 최초로 부사장급을 배출했다. 곽 신임 부사장은 방송 표준 기술 분야에서 회사 내 최고의 전문가로 통한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문가인 민경오 연구위원은 전무급 수석연구위원으로 올랐다. LG전자는 수석 연구위원 이외에 임원급 처우를 받는 연구·전문위원 인사를 내년 초 실시할 예정이다.
LG전자 관계자는 “LG는 R&D 전문가들이 조직관리 책임을 맡지 않고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연구위원 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며 “향후 R&D 분야에서 사장급까지 나올 수 있도록 그룹 차원에서 적극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큰 역할 담당한 인재에 더 많은 기회 부여
LG그룹 계열사인 LG실트론, LG생활건강, LG상사 역시 국내시장에서 새로운 기술로 업계를 선도하고 실적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인재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책임을 부여했다.
LG실트론은 300mm 웨이퍼의 생산성 향상과 원가 개선에 기여한 한시재 상무를 전무로, 이홍우 부장을 상무로 각각 올렸다.
여성 임원에 대한 배려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특히 이번 임원인사에서는 그룹 최초로 공채 출신 여성이 전무까지 승진하는 사례가 생겼다. 화제의 주인공은 LG생활건강 생활용품사업부장 이정애 상무로 이번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또 화장품 더 페이스샵 마케팅부문장인 김희선 부문장을 상무로 승진시켰다. LG생활건강은 이들을 포함해 전무 2명, 상무 5명의 승진을 확정했다.
LG상사는 팜(Palm), 조림·석탄 사업 등 미래사업 개발에 힘써온 인도네시아 지역총괄 송치호 전무와 해외 자원 투자의 효율적 투자 프로세스를 정비한 CFO 허성 전무를 각각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을 포함해 4명의 승진자를 배출했다.
LG그룹은 이번 인사와 관련해 “어려운 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시장선도에 대한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남다른 고객가치를 창출한 인재를 발탁했으며 사업 책임자의 경우에는 재무성과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준비를 엄격히 따졌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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