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경제민주화’를 부르짖고 있음에도, 일부 대기업들은 이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모양새다. 재벌들의 경제 ‘반(反)민주화’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들 수 있다.
최근엔 한화투자증권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여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그룹 계열사 ‘한화에스엔씨(S&C)'를 상대로 자사의 전산작업이나 소모품 구매 업무 등을 위임하는 내용의 아웃소싱 계약을 체결하고, 그 대가로 100억원을 지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회장 아드님 회사’에 몰아드려야…”
아웃소싱이란 경영 효과 및 효율의 극대화를 위한 방안으로 기업 업무의 일부를 제3자에게 위탁해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적지 않은 대기업들이 이런 아웃소싱을 실시하고 있으며, 일부는 그룹 내에 아웃소싱 업무를 위한 계열사를 설립해, 해당 계열사에 관련 업무를 맡기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아웃소싱이 ‘대기업 그룹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라는 비판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에 힘입어, 정부는 지난 3월 이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모범기준을 만들고 대기업 집단에 채택을 권고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광고, 시스템통합(SI), 물류, 건설 등의 분야에서 경쟁입찰을 확대하고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실행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대기업의 부당한 방식의 일감 몰아주기는 처절하게 근절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도, 한화투자증권은 계열사인 한화S&C에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알려져 재계의 구설수에 올랐다. 이 탓에 재계 안팎에서 “한화그룹 내부에서는 여전히 경제 민주화에 역행하는 일감몰아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져 논란이 예상된다.
수의계약이란 경쟁에 의하지 아니하고 임의로 적당한 상대자를 선정하여 체결하는 계약을 말한다. 재계에서는 “수의계약의 탈을 쓴 이런 ‘일감 몰아주기’ 탓에 중소기업은 입찰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화S&C는 그룹 주요 계열사의 전산망 관리를 맡고 있는 시스템 통합(SI) 업체로,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S&C는 1992년 발족해 한화그룹 종합운영 서비스 사업을 수행해 온 토털 IT 서비스 전문 기업으로 2001년 4월 (주)한화로부터 분리됐다.
이후 사업 확대를 추진하여 IT컨설팅, IT아웃소싱, SI(System Integration), NI(Network Integration), 산업 자동화 및 IBS, 사이버교육, 홈네트워크 솔루션, U-city 등 전 분야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IT서비스 전문기업으로 잘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한화투자증권이 하반기 수의계약으로 전산 운용과 통합 유지 보수를 맡기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한화S&C는 100억을 벌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일감 몰아주기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 “공개입찰로 공정하게 선정했다”지만…
이번 ‘일감몰아주기’ 논란과 관련, 한화투자증권 측은 “수의계약의 형식으로 계약이 이뤄졌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계약은 공개입찰 형식으로 체결됐다”며 “공정하고 엄격한 절차에 의해 이뤄진 만큼,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한화S&C와는 해당 업체가 처음 설립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거래해왔다”며 “전산 업무는 그 특성상, 정보를 많이 다루게 되는데, 기업에게 있어서 정보는 곧 자산이다. (정보 유출 등의 우려가 있는) 이런 상황에서, 보안 유지 등의 문제 때문에 아무래도 외부 업체보다는 같은 그룹 계열사에 맡기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에서는 ‘공정하고 엄격한 절차에 의한 공개입찰’을 강조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사실상 형식에 치우쳤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소 IT업체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 시스템통합(SI)업체에 전산업무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일감몰아주기가 자행되고 있다”며 “경쟁 입찰이라곤 하지만, 그룹 소속 계열사와 외부 중소업체 사이에 과연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다른 SI 업체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상실 할 뿐만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 왜곡과 사업비 상승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며 “이는 경제 민주화에 역행 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공정경쟁이나 중소기업과의 상생 등을 표방하지만 불공정한 거래 형태가 더 굳어지는 양상을 보여준 사례”라며 “이 같은 불공정한 내부거래는 다른 대기업에서도 비일비재 발생하고 있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경쟁업체나 중소업체에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8월 말에 발표한 현황에 따르면 46개 대기업집단 계열사에 대한 매출액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13.2%로, 2010년 말 12%에 비해 높아졌다. 이들 기업의 내부거래액은 186조원에 이르고, 내부거래 비중은 비상장사와 총수가 있는 기업이 상장사나 총수가 없는 곳에 비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계열기업에 따라서는 내부거래 비중이 80%나 되는 곳도 있어 일감몰아주기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정부의 무딘 칼날에 대기업들은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일감몰아주기로 제 식구 배불리기에 혈안이 돼 있다”며 “지난 7월 새누리당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경제민주화 2호 법안’을 발의했고, 당 내 '재벌개혁을 주도하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재벌의 과도한 시장지배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고 밝혔지만 실행 된 것이 있는지 의문”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발의할 경제민주화 2호 법안은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금지 및 처벌 강화, 재벌의 사익편취 목적 회사설립 금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위법행위에 대한 시정조치 확대강화 등을 담고 있었다. 이외에도 재벌 총수의 사익 편취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지원행위를 규제하는 조항이 들어갈 것으로 전해졌지만 여전히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대기업들은 허술한 법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 “몰아주기 자제하자” 약속, 말로만?
재벌그룹들은 연초 4개 분야에 걸쳐 경쟁입찰 확대, 독립 중소기업 직발주 확대, 내부거래위원회 설치 확대 등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0월 24일, 10대 그룹에 속한 상장 계열사를 대상으로 건설ㆍ광고ㆍ물류ㆍ시스템통합 분야의 올 4~7월 계약실적(총 8조 9671억원)을 분석한 결과 시스템통합 88%, 물류 82%, 광고 72%의 수의계약 비중(금액 기준)을 보여, 여전히 수의계약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의 한 실무관은 “재벌그룹의 수의계약 비율이 여전히 높은 것은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거래관행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감 몰아주기를 자제하겠다”는 약속은 허황된 구호 뿐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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