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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그동안 거의 중립지대에 머물고 있던 안철수 전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대한 적극지지를 선언함으로써 대통령 선거는 비로소 뚜렷한 양자 대결의 구도로 접어들었다. 지난달 안철수 교수는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스스로 사퇴했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한 단일화인가 아니면 그저 약속이란 명분을 살리기 위한 단순 포기일 뿐인가 구구한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그 어정쩡한 사퇴의 여파는 길었다. 후보 사퇴 선언으로부터 13일. 그는 ‘지방에 내려가 쉬겠다’는 말만 남긴 채 매스컴의 눈을 피해 잠행하기도 하고 선거전선 외곽으로 물러나 있기도 했다.
모두가 궁금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그가 행여 되돌아와 문재인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경계했고, 야당인 통합민주당은 그가 설마 선거가 끝날 때까지 어정쩡한 행보에 머물러 있을까 두려워했다. 통합민주당 쪽이 더 애가 탔던 것은, 안철수의 의지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야당 문재인 후보는 줄곧 여당 박근혜 후보에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45대 47, 49대 42 - 매일 발표되는 여러 언론사와 조사기관 등의 조사에서, 문재인 후보는 작게 2%P에서 크게는 7%P 차이로 박근혜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6일 서울 정동에서 단독 회동을 마친 뒤 안철수 교수는 ‘오늘이 대선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선언은 눈길을 끈다. 민심이란 것이 그리 단순히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들의 바램대로라면 십수일 간 고착돼 있던 박근혜-문재인 간의 우열에 변동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평론가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보수 정파가 실패한다면 필경 그들 내부의 부패가 원인일 것이며, 진보 정파가 실패한다면 필경 그들 사이의 분열이 원인일 것이라는 의미다. 보수는 부정부패에 빠지지만 않으면 민심을 얻을 수 있고, 진보는 단결만 한다면 그들의 뜻을 관철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 정파인 새누리당은 전에 없는 위기감 속에 출발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부터 당시 한나라당은 강력한 민심의 반란을 절감했다. 4월의 19대 총선도 어쩌면 ‘전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치렀다. 당 조직을 뒤엎고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켜 당 이름까지 바꾸는 고육지계,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대국민 선언 등으로 환골탈태를 약속한 뒤에야 그 위기를 극적으로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일찌감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지난 8월말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들의 묘소 뿐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와 저 멀리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까지 찾아가 헌화했다. 세간의 평이야 어떻든, 유신시절 억울한 노동자들의 권리 회복을 외치며 자기 몸을 불살라 산화한 고 전태일 열사의 동상에까지 꽃을 들고 찾아간 것은 ‘새정치’를 해보겠다는 자기선언에 스스로 책임을 다하려는 나름의 노력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었다.
새누리당의 위기는 상당부분 박 후보의 전임자이자 현 대통령인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기인한다. 그의 친형 이상득 의원을 비롯해 멘토 최시중씨가 MB의 임기도 끝나기 전에 구속됐고 그의 아들 이름으로 진행하려던 내곡동 사저부지 구입문제로 특검의 수사도 받았다. 이를 반영하듯 박 후보는 전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의 어떤 유산도 물려받기를 명백하게 거부했다. 19대 총선 당시 공천에서 소위 친이계로 불리는 당직자들을 소외시킨 데 이어 대선 캠프 조직에서도 이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김종인, 안대희 등 외부 영입인사들에게 공약 구상을 맡긴 결과 ‘경제 민주화’라는, 그러니까 그동안 ‘재벌기업의 벗’으로 여겨져 온 새누리당으로서는 예상할 수도 없는 개혁적 구호까지 들고 나왔다. 그만큼 위기감이 절박했던 것일 게다.
그러나 정작 박 후보 지지율이 안정권에 접어든 것은 지난 10월 초, 한동안의 개혁 구호를 집어치우고 ‘국민 대통합’이란 명분하에 그가 내쳤던 인물들을 다시 불러모은 이후다. 새로운 지지층이 형성됐다기 보다는 기득권 세력들이 안고 있는 고정 보수층이 박 후보 진영으로 되돌아온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무성 전의원의 선대위원장 취임과 한광옥 김경재 등 구 민주당 중진들 영입 후 범보수로 분류되는 보수계 야당들, 이회창 이인제씨 등이 박근혜 후보 캠프에 가담하거나 지지를 공표했다. 박 후보와 대립의 각을 세웠던 이재오 의원도 그 자신의 대선 후보 등록을 포기하고 측근들의 입을 빌려 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때로부터 40%를 넘는 전통적 보수고정표가 박 후보를 안정권에 올려놓았다. 노선이나 입장의 차이를 떠나 위기 때는 무조건 뭉친다는 보수정파의 특성이 여실히 재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非보수(보수파의 상대편에 있는 세력을 모두 ‘진보’라고 통칭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이번에도 분열로 인해 패배하고 말 것인가. 안철수 전 후보의 잠행이 한동안 이러한 우려를 낳았으나 6일 안 전 후보의 문재인 지지선언은 이변의 가능성을 던져주었다.
각 후보의 정체성은 이제 더 빼고 더할 것도 없이 명료해졌다. 보수 정권의 연장이냐 그에 대한 심판 내지는 새로운 정권으로의 교체냐. 유권자들의 선택 항목도 단순해진 셈이다. 남은 일은 이 선거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흔들림 없이 공명정대하게 치러지는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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