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TV홈쇼핑 업계의 고질적인 납품비리를 대대적으로 적발하면서 업계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검찰 수사결과 홈쇼핑 업체는 상품 론칭, 황금시간대 편성 등을 이유로 매출액의 30~40%를 방송시간대에 따라 별도로 수수료로 챙겨왔고 영상물 제작비용, ARS비용, 배송료 등은 공급업체나 생산업자에 전가시켰다. 검찰이 이번에 적발한 홈쇼핑 업체로는 N홈쇼핑, G홈쇼핑, 서로 다른 H홈쇼핑 2곳 등 국내 6개 홈쇼핑 업체 중 절반 이상이 납품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박근범)는 홈쇼핑업체 관계자 7명과 공급업체 및 납품업체 대표 17명, 식약청 공무원 3명 등 총 27명을 기소(구속 4명, 불구속 23명)했다.
이 가운데 납품업체로부터 제품 론칭과 사은품 선정, 황금방송시간대 배정 등의 청탁 명목으로 뇌물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N홈쇼핑 전직 MD 전모(32)씨가 구속 기소됐고, H홈쇼핑 상품기획자(MD) 박모(37)씨와 G홈쇼핑 MD 권모(38)씨가 납품업체의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됐다.
이와 함께 방송시간대 편성 또는 횟수, 방송수수료 결정 등의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한 H홈쇼핑 방송본부장 최모(52)씨, N홈쇼핑의 마케팅본부장 한모(44)씨와 편성팀장 박모(39)씨, H홈쇼핑의 상품팀장 이모(39)씨 등 홈쇼핑업체 간부 4명이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2007년 9월∼올 7월 N홈쇼핑 건강가공팀 MD로 근무하며 방송 노출을 원하는 건강식품업체 및 사은품 업체 등 8곳으로부터 납품 또는 황금시간대 배정 청탁의 대가로 총 4억7천여만원을 받았다. 함께 구속기소된 N홈쇼핑 전 팀장 박모(39)씨도 같은 수법으로 1억1천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검찰은 MD가 상품개발 및 방송시간에 대한 기안을 만들어 편성팀에 보내면 이를 기초로 가편성표가 작성돼 편성회의에 올라가는 구조에서 영세한 중소기업이 홈쇼핑 납품을 위해 서로 경쟁하며 MD나 편성팀장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홈쇼핑 업체는 론칭이나 상품 수수료 산정 등에 있어서 이른바 ‘갑’의 입장에, 중소기업들은 ‘을’의 입장이므로 실권자인 MD들이 이를 빌미로 관행적으로 리베이트를 수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 MD, ‘비리의 온상’
검찰이 이번 홈쇼핑 납품비리 수사에서 가장 중점을 둔 ‘타깃’은 MD였다. 이는 대부분의 MD들이 납품 과정 곳곳에서 강한 입김을 냈고, MD에 대한 로비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 납품구조를 고려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일반적인 홈쇼핑 납품절차는 온라인 입점상품 제안-MD 미팅-상품 평가-거래계약 체결-방송-배송-정산의 순서로 이뤄진다. 납품업체들은 MD 미팅을 통해 샘플 요청이나 방송을 통한 판매 여부에 대한 검토를 받고, 이후 상품의 판매가격이나 수수료율 등 구체적인 계약 내용과 판매조건을 협의하게 된다.
통상 판매가의 10% 범위 내에서 사은품을 제공하는 업계 특성상 MD들은 제품의 성격에 부합한 사은품 선정에도 입김을 발휘한다. 사은품을 전문으로 납품하는 업자들이 주로 MD에게 로비를 벌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MD들은 공급업체에 특정 사은품업체의 사은품을 정상가격보다 고가로 납품받도록 압력을 행사한 뒤 사은품업체로부터 매입가격과 정상가격과의 차액을 리베이트로 수수했다.
또 MD들은 방송시간을 기안, 팀장의 결재를 받아 편성팀에 송부하고 이를 토대로 편성팀에서 방송시간표를 작성하기 때문에 제품 판매에 적잖게 영향을 미치는 방송시간대 결정에도 MD의 영향력이 행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품의 종류나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홈쇼핑 업계에서 부르는 '황금방송' 시간대는 오전 8~10시, 오후 9~11시로 납품업체들은 이 ‘황금’ 시간대에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했다.
MD는 양질의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발굴해 납품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영세한 중소기업들의 자사 제품을 론칭 하려는 치열한 경쟁을 이용해 납품업체 위에 군림해왔다고 검찰은 전했다.
공급업체들은 론칭에 실패할 경우 상품·영상물 제작 등을 위해 통상 5000~6000만원의 비용을 손실로 떠안게 되는 유통구조이기 때문에 론칭 실무를 맡는 MD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해서라도 론칭을 성공시키려 했다.
특히 재고 소진을 위한 추가 방송과 선입고 물량 조절을 위해 일선 현장의 실무자인 MD에게 로비의 필요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를 통해 MD들은 납품업체의 청탁이나 편의를 봐준 대가로 기본적으로 매월 200~600만원씩 정기적으로 리베이트를 수수했다.
◇ 제3자 통해 뇌물 수수 등 치밀한 범행
홈쇼핑 관계자들은 친인척의 금융계좌뿐만 아니라 동생 친구, 처형 친구, 장인 회사 직원 등 홈쇼핑 거래와 관련성이 전혀 없거나 친인척이 아닌 제3자를 통해 뇌물을 수수할 만큼 범행수법도 치밀했다.
MD들은 방송기간 동안 매월 매출액의 1~4% 정도를 챙기면서도 수수액을 더 늘리기 위해 특정 납품업체를 ‘밀어주는’ 식으로 매출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아울러 고가의 외제차량을 납품업체로부터 제공받거나 납품업체의 내부정보를 이용하거나 비상장 주식을 저가에 매수해 향후 상장 시 시세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재테크’를 했다.
홈쇼핑 납품비리는 MD뿐만 아니라 팀장, 본부장 등 각 직급에 따라 단계별로 로비가 이뤄졌다. 이는 각 홈쇼핑 업체의 상품팀장이나 편성팀장, 방송 또는 마케팅 본부장 등이 상품선정위원회에서 론칭 여부를 최종 결정하고, 방송시간대나 결재 등에 관여하기 때문에 납품업체들은 직급별로 별도의 뇌물을 제공했다.
검찰 관계자는 “홈쇼핑 업계의 과도한 수수료 및 제반비용의 공급업체 전가와 홈쇼핑 MD들의 상품선정, 방송시간 배정 등에 대한 막강한 권한으로 인해 공급업체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단 한번의 ‘대박’ 방송을 위해 MD들에게 로비를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납품업체들은 홈쇼핑 관계자들에게 제공할 뇌물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결과적으로 기업 회계의 부실을 초래했다. 검찰은 홈쇼핑 업계에 만연한 납품비리가 일시에 근절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지속적으로 납품비리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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