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제네릭(복제약) 제약기업 ‘테바’의 국내시장 진출이 본격화됐다. 테바는 한독약품과 손잡고 합작사 설립에 합의,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첫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테바의 한국시장 진출 가시화로 국내 제약업계는 긴장상태에 빠졌다.
기존에 국내 진출한 제네릭 외국기업들과는 규모부터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일본도 감당하기 힘든 시장파괴력에 업계는 손을 뻗은 한독제약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독약품은 국내를 대표하는 제약회사다. 그간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꼽으며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의약품을 만들어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하지만 최근에는 신약 개발보다는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 완제 의약품을 국내에 도입하는 데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제약회사가 아니라 ‘다국적사 도매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합작사로 홀로서기?
김신권 한독약품 명예회장은 지난 1954년 한독약품을 창업했다. 김 명예회장은 196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독일 제약사인 훽스트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제약 선진화에 나섰다. 수입품과 동일한 품질의 의약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며 외화 절약에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김신권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영진 한독약품 회장은 지난 9월 사노피(구 훽스트)와 합작 지분을 정리했다. 사노피 제품의 국내 유통 역할도 접었다. 아버지 시절에 맺었던 50여년에 가까운 합작 관계를 청산하며 홀로서기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독립 경영을 선언한지 불과 3개월 만에 이스라엘계 다국적 제약사인 테바와 합작사 설립을 발표했다.
작년 매출로만 한국 제약시장 전체규모인 15조원을 넘어서는 175억달러(18조원)를 올린 테바사는 자본금 150억의 합작비율 ‘테바 51%-한독약품 49%’로 의약품 도매업체를 설립해 내년초 국내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테바는 이렇게 설립된 ‘한독테바’를 통해 다발성경화증치료제 ‘코팍손’은 물론 기존 제네릭 의약품 등 다양한 치료제를 공급하고, 한독약품은 테바 제품에 대한 영업과 마케팅, 유통, 대관 업무 등을 담당할 계획이다.
한독테바 관계자는 “폭 넓은 포트폴리오, R&D 역량, 글로벌 인프라 및 노하우와 한독약품이 보유하고 있는 전문성과 명성을 바탕으로 한국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겠다”고 밝혔다. 김영진 한독약품 회장은 합작회사 설립에 대해 “고품질의 복제약품을 적정가격에 공급해 국내 제약시장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국내 시장 ‘들썩’
테바의 한국시장 본격 진출에 국내 시장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한국시장에 진출해 있는 산도스나 한국화이자의 제네릭 전문 바이탈스, 한국법인 설립과 함께 한국시장 공략채비를 끝낸 스페인계 라보라토리신파, 근화제약 인수를 통해 진출을 알린 알보젠 등 여타 제네릭 전문기업들과는 그 강도의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이 거점이긴 하나 세계 제네릭 기업 1위라는 간판에 미국 처방약시장에서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주요 제약시장에서의 M&A와 합작투자를 통해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다국적기업 테바의 위력은 막강하다.
테바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진출해 있는 일본에서도 테바는 일본의 제약산업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 완제의약품을 들여오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제품 경쟁력까지 좋아 일본의 세계적 제약기업 다케다제약 조차도 경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 파괴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때문에 제약업계는 테바의 한국시장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한독약품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독약품이 테바와의 합작사 설립은 국내 제약사들이 경쟁하고 있는 제네릭시장에서 식성 좋은 공룡을 불러온 꼴이라는 지적이다.
한 제약사 임원은 “보따리상 취급 제품이 사노피에서 테바 의약품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약가 인하로 인한 실적 부진을 만회하려는 움직임은 이해하지만 다국적사 제품 도입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테바의 특허 회피 제네릭 의약품 개발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한미FTA에 따라 2015년 발효되는 허가·특허 연계제도에서 시장독점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제네릭 허가신청을 할 때 오리지널 의약품 보유사가 소송을 제기하면 12개월간 제네릭에 대한 허가가 지연돼 제품 출시가 그 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49년간 이어온 다국적 기업과의 합작 관계 정리와 함께 홀로서기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한독약품의 첫 걸음이 테바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라며 “제조업도 아닌 도매업이라는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쥴릭파마 전철 밟을까
의약품 도매업계 역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13년전 스위스계 유통회사인 쥴릭파마코리아를 국내시장에 끌어들였던 한독약품이 이번에는 제네릭기업인 테바를 통해 도매업까지 진출한다는데 우려하고 있다.
한독약품에 의해 한국에 진출한 쥴릭은 전국 7∼8000여 약국거래선을 갖고 있던 한독약품의 약국 영업조직 100여 명을 주축으로 출범했다. 또 한독약품의 경기도 오산 소재 창고를 지분투자 형식으로 받아 중앙유통센터로 사용했다. 한독약품은 그 당시 쥴릭파마코리아에 5%의 지분을 투자했었다.
관련업계가 한독약품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쥴릭파마가 국내 도매업계에 타격을 주었듯이 테바 역시 국내 제약업계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도매업계 관계자들은 “쥴릭이 한국시장 진출 당시 공언했던 선진물류는 없었다”며 “지금은 한국에서는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자금에 매각돼 시장만 교란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쥴릭은 한국시장에 진출, 메이저급 다국적 제약사들의 의약품을 사실상 독점판매해 국내 도매업계의 예속화와 이들 다국적사 제품에 대한 유통마진축소를 부추겼다. 특히 앞으로 한독테바 합작법인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을 기존 도매업체가 판매할 가능성도 있어 한독의 대도매정책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한몫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약가 인하로 떨어진 실적을 극복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국적사 제품 도입에만 열을 올리며 제약사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국내 제약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테바가 일본시장 진출과 같은 방식으로 한독약품과 손을 잡고 국내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테바는 일본뿐만 아니라 85년 미국시장에 진출할 때도 합작법인을 설립했으며, 5년 후 합작 파트너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미국시장에 안착했다.
테바의 이러한 성장의 역사에 대해 전문가들은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내시장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형성해 안정적인 이익을 확보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다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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