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그 날의 기억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어느 날, 김정록 의원은 부모님에게 “개근상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인생 첫 목표였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로 향했다. 무거운 의족을 차고 교련수업의 30km 행군까지 소화했다. 다리에 피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인생 첫 목표였던 ‘개근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김 의원은 “장애로 삶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고 회상했다.
학교 졸업 후, 그는 사회에 진출하려 했지만 불편한 신체 탓에 연거푸 고배를 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한 회사에 임시직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제 머릿속에는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물류회사 입사를 위해 상경한 그는 사무실 간이침대가 유일한 휴식처일 정도로 일에 몰두했다.
가정을 이룬 후에는 가장이란 책임감으로 일에 더욱 매진했다. 다니던 직장의 사장이 “내가 할 일이 없다”고 말할 만큼 열심히 일했고, 그 노력이 인정받아 1983년엔 그 사업을 이어 받았다. 그 후 통관, 보관창고, 운수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회사는 급성장했고, 생활은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더 큰’ 꿈을 품고 있었다.
◇ ‘사람’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하다
김정록 의원은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 너무도 마음 아팠다”면서 “당시 대부분 최저생계비로 생활을 유지하던 장애인에게 절실한 것은 자립기반이 되는 직장을 제공하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큰 뜻을 품고 시작한 3천200평 규모의 장애인 작업장이 건립 중에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그는 지난 2000년 일회용 주사기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그는 지체장애인 및 지적 중증장애인 40여명을 고용했다. “장애인을 데리고 무슨 회사를 하느냐”는 걱정과는 달리, 회사는 ‘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고 국내 일회용 주사기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등 중견 의료기기업체로 성장했다.
◇ “장애인 일자리 하나가 한 가정을 살려”
“한 집에 지적장애인이 한 명 있으면, 그 가정이 파탄날 수 있어요. 장애인 한 명이 일자리를 구하면, 한 가정 전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뜻으로 설립한 회사인 만큼, 김정록 의원은 장애인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통근버스도 만들고, 구내식당도 세웠다. 지난 2000년 입사한 한 지체장애인 가족이 보낸 편지를 김 의원은 잊지 못한다고 했다. 편지에는 “아이가 직장을 구하고, 14년 만에 저희 부부가 처음 외출을 할 수 있었어요. 학교도 늘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야 했는데 이제는 정말 든든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 1991년 김 의원은 고(故) 장기철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회장을 만나면서 장애인 운동을 시작했다. “열악한 장애인 복지를 사회 운동을 통해 바꿔나가고 싶었다”는 그는 1999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부회장으로 임명되면서 장애인자립작업장의 설립과 지원, 장애인 복지관 수탁 운영, 지체장애인 편의시설지원센터 제도화 등에 힘을 쏟았다. 2009년엔 한국지체장애인협회의 제6대 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취임 후, 그는 전문적이고 투명한 한국지체장애인협회를 만들기 위해 발로 뛰었다. 취임 직후, 협회의 개혁을 대내외에 선포했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협회 홈페이지에 ‘신문고’를 설치, 운영했다. 또, 매니페스토 추진단을 발대하고 의회정치대학을 개설하는 한편, 기업 및 재단과 연계해 100여명의 장애 학생에게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했다.
◇ ‘베푸는 장애인’ 되고파
김정록 의원은 장애인들이 ‘남을 돕는’ 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헌혈 운동이 대표적이다. 그는 스스로 장기기증을 약속하기도 했다.
“장애인이 도움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010년 지진 피해를 겪은 칠레의 장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협회 회원 및 임직원들이 모금한 성금을 전달한 일은 정말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2012년 4월 11일, 그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2번으로 장애계를 대표해 국회에 입성했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와 어려움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실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김 의원은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발달장애인 법안을 ‘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 또, 혼자 살면서 거동을 하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 1천600여명을 위해 24시간 활동보조를 해주는 서비스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등록장애인 268만명, 비공식 장애인이 약 480만 명으로 추산되는 지금,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제 꿈은 대한민국 장애인이 신체적 장애와 환경에 좌절하지 않는 세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제 남은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각오로 의정활동에 매진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학업과 취업을 포기하지 않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행복한 삶과 희망찬 미래를 일구어 나갈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제 힘을 다하겠습니다.”
◇ 김정록 의원은…
1951년 전남 화순 출생. 1970년에 광주 숭일고를, 2007년에 전주비전대학 경영정보과를 졸업했다. △(주)세일그룹 대표이사 △(사)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 부회장 △장애인 표준사업장 (주)CPL 대표이사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 등을 역임한 김 의원은 현재 제19대 국회의원 외에도 △(사)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장 △인덕학교(장애인학교)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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