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양혁진 기자] 지난 1998년부터 외교통상부 산하에서 통상 및 교섭업무를 담당해 온 통상교섭본부가 사실상 해체의 길을 걸으면서 통상의 전권이 산업통상자원부로 넘어가게 됐다.
당장 FTA로 인한 후속대책 마련이 시급한 가운데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1월22일 서울 종로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정부 조직개편에 따른 부처 간 기능 조정안을 발표했다. 조정안에 따르면 통상교섭본부의 통상교섭, 통상교섭 총괄 조정기능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현 지식경제부)로 이관된다. 다자·양자경제외교 및 국제경제협력기능만 외교부에 남는다. 통상의 전권이 산자부로 넘어간 셈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월15일 인수위의 1차 조직개편안이 발표되자 22일까지 이어지는 해외 출장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했다. 그 후 박근혜 당선인 측에 외교·통상 분리 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수위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강석훈 인수위 국정기획조정 분과위원은 “통상교섭과 관련한 전반적인 사항이 모두 이관됐다. 교섭권과 협상권 역시 통상교섭본부로 넘어 간다”고 밝혔다.
조직개편안에 따라 통상교섭본부의 5개 국 가운데 FTA 정책국, FTA 교섭국은 산자부로 이관될 전망이다. 대신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담당하는 다자통상국과 지역통상국, G20 업무를 맡은 국제경제국은 외교부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교섭본부는 해체돼 실(室)급으로 조정될 예정이다. 통상교섭본부장 직책이 사라지는 대신 산자부 장관이 통상교섭 대표를 맡게 된다.
산자부는 기획재정부의 FTA 국내대책 수립기능도 흡수해 기획과 교섭, 정책, 대책·지원 등 통상 관련 업무를 전담하게 됐다.
◇ 통상 떠맡은 산자부, 전문성 결여?
인수위는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산자부에 통상교섭의 모든 권한을 이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직 개편이 전문성 향상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한 통상전문가는 “최근 통상 추세는 관세, 서비스 협상으로 제조업 중심의 산자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전문성이 결여된 통상교섭이 진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FTA로 인해 피해를 입는 계층에 대한 후속 대책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쌀, 쇠고기 등이 여기에 해당 한다”며 “농민들에 대한 대책을 산자부가 마련한다면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제5차 협상이 재개될 한ㆍ중 FTA에서 조직 수술에 따른 후유증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무엇보다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 성향이 강한 산업 부처가 FTA 이슈를 관장하는 것은 개방에 대해 새 정부의 스탠스가 부정적이라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산자부가 서둘러 통상에 대한 납득할 만한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등 산자부는 기존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안을 다뤄야 한다”며 “조직 정비와 함께 통상 관련 이슈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접근법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산자부 장관이 통상교섭 일정을 소화하기는 버거워 교섭 역량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통상교섭본부의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통상교섭본부장이 외부적으로는 통상장관으로 1년에 200일 넘게 교섭에 나섰다”며 “통상교섭 상대국 입장에서는 장관급이 교섭 테이블에 나오기 기대한다. 산자부 장관이 그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WTO 사무총장 도전도 ‘먹구름’
통상교섭본부가 해체되면서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이 WTO 사무총장으로 가는 길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지난해 12월28일 WTO 사무총장 선거에 입후보한 박 본부장은 1월29일부터 3일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일반이사회에서 정견발표를 할 예정이다. WTO 사무총장 선거운동은 3월까지 진행되며 일반이사회는 5월말까지 모든 회원국과 협의해 차기 사무총장을 선출한다.
차기 WTO 사무총장 후보는 박 본부장을 포함해 총 9명이다. 하지만 통상교섭본부가 실급으로 축소되고 본부장직 역시 실장급(1급)으로 강등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WTO 사무총장 후보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2월25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박 본부장의 후보 활동을 어느 부처에서 담당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시형 통상교섭조정관은 지난 1월23일 브리핑에서 “이번 조직 개편이 사무총장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면서도 “결코 호의적인 영향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통상교섭본부의 해체가 적지 않은 후폭풍을 가져다줄 전망이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