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인간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태어났다

정해용 / 기사승인 : 2011-09-14 11: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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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빚어진다. 어떻게 살아온 사람이든, 자기 삶이 전적으로 운명이나 주변 환경에 의해서만 결과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에는 많은 변화의 기회들이 찾아오고, 그 순간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흔히 통과해야 하는 관문 가운데는 중요한 것도 있고 사소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와 같은 사소한 선택은 고작해야 오후 한나절의 컨디션에 영향을 줄 뿐이지만, 결혼 배우자의 선택이나 취업할 회사의 선택과 같은 것은 향후 10년, 20년, 혹은 평생의 삶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선택은 지금 자신의 내적 외적 조건에 의해 크게 뒤바꿀 여지가 별로 없기도 하나, 어떤 선택에는 미래의 행복과 불행이 천국과 지옥 차이만큼이나 크게 엇갈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큰 차이 없이 주어지는 초중고 교육을 마친 고3 학생들이 대입 지원서를 쓰는 계절이 돌아왔다. 대학이나 학과의 선택이야말로 한 사람의 향후 삶을 크게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기로다. 지금까지 그 또래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보편적 기본교육을 받아왔다면, 앞으로는 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화된 교육을 받게 되고 그 결과로 그의 삶은 특정 분야로 전문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 선택의 결과를 뒤집을 기회를 몇 번은 더 만날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자기 전공을 토대로 생각하고 그것과 관련된 직업을 구하고 어쩌면 그것과 관련된 생활이 일생을 지배하게 될 수도 있다. 의과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의사의 길을 갈 것이고, 공과대학을 선택한 사람은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 것이며, 어느 예술 분야를 선택한 사람은 예술과 연관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대학 학과의 선택이야말로 부모 품에서 큰 고민 없이 살아온 젊은이들이 자기 미래의 인생에 대해 최초로 내리는 중대 결정의 기회라 할 수 있다. 대학을 가지 않기로 하는 것 역시 중대한 선택이다. 물론 이 한 번의 기회로 향후의 모든 것이 결정지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대학만이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관문은 아니며, 한 번 진학한 후에라도 학업이 중단되거나 전공을 바꾸거나 대학을 다시 진학하는 등의 변화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이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고비임은 보편적 사실이다.

어떤 수험생은 혼자서 7~8개의 대학에 지원서를 낸다고 한다. 입시에서 수시전형의 폭이 넓어지면서 동시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기 때문이다. 2012학년 입시는 수시 선발 인원이 정시 선발 인원을 초과해 대학정원의 60%로 늘었다. 여기에는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이 있다. 부정적 측면은 그만큼 입시에 따른 수험생들의 경제적 부담(전형료)과 시간적 부담이 늘었다는 점이다. 같은 대학이라 해도 수시와 정시, 특차, 특례, 입학사정관 전형, 논술전형, 내신 중심, 수능 중심 등 다양한 방식의 전형으로 중복 응시를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지난 해 전국 대학들이 벌어들인 전형료 수입이 2천억 원을 넘었다. 수시 선발의 인원이나 기법이 좀 더 다양해진 올해 전형료 부담은 그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수시 선발의 확대가 갖는 긍정적 측면은 학생들이 좀 더 다양한 대학 학과를 대상으로 입학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입시 관문을 기필코 통과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분명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결과는 이런 기회의 확대가 수험생들에게 다소 ‘로또’스러운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합격의 기회가 늘어난다 한들 한 사람이 두 개의 대학을 동시에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과학자가 되고 싶기도 한 학생이 두 개의 각기 다른 대학 학과에 지원서를 넣는 것이 가능하며, 그렇다면 이 학생은 이제 어느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가 오느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다소 도박적인 선택을 자연스럽게 기다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자기 미래의 희망보다도 수능 결과에 따라 전혀 엉뚱한 학과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향후 ‘우연스런 삶’을 살게 된다는 얘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게’ 각기 다른 여러 학과로부터 합격통지서가 동시에 날아온다면 학생의 고민은 아직 끝나지가 않았다. 글쎄,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어느 학과를 나와야 취업이 잘 될까가 선택의 제1조건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입학 원서나 합격 통지서를 앞에 두고 선택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주제넘게 한 마디 조언하자면, 내 생각은 이렇다. 어떤 전공을 택할 때 취직이 잘 될까보다는 향후 돈을 더 잘 벌수 있을까 고민이 나은 것 같고, 돈을 더 잘 벌수 있을까 보다는 향후 더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인간이 취직을 위해 태어난 동물이라면 많이 슬프고, 돈 벌기 위해 태어난 동물이라고 해도 좀은 슬프다. 누가 정의했더라,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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