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곁에 ‘동네 아저씨’로 남겠다”

유상석 / 기사승인 : 2013-02-14 16: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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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 김희국 새누리당(대구 중ㆍ남구) 의원 (120)

▲ ‘국회의원’이라는 호칭보다 ‘동네 아저씨’, ‘김반장’으로 불리는 것이 더 좋다는 김희국 (새누리당, 대구 중ㆍ남구)의원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여기 ‘국회의원’으로 불릴 때보다 ‘동네 아저씨’, ‘김반장’으로 불릴 때가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홈페이지 메인화면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국회에서 김반장을 찾아주세요’, 명함에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스타일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동네아저씨처럼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사람, 바로 김희국 (새누리당, 대구 중ㆍ남구)의원이다.


◇ ‘국토해양분야에선 이미 중진’
국토부 차관 출신인 김희국 의원은 경북대를 졸업하고,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31년간 국토해양부에 몸담았다. 부산항만청 항무과장과 옛 건설교통부 공보담당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기획국장직을 거쳐 지난 정권에서는 핵심사업인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부본부장직도 맡았다.


김 의원은 공무원 생활에서의 첫 부서를 해양항만청으로 자원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제가 읽던 소설 중에서 ‘후대망’이라는 일본소설이 있습니다. 후대망은 에도막부 시절 이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데, 그 소설을 보고 국가의 미래의 중심에는 해운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요.”


그 뒤 해양 전문가로 발돋움하자 고속철도 사업이 시작됐고, 김 의원은 다시 초대 고속철도 과장으로 뽑혀 교통 분야에 뛰어들게 됐다. 이후 경북 국도관리소장을 거쳐 3년 동안 사우디에서 건설관까지 맡으면서 개발전문가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이어 대구경북 혁신도시개발과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의 공을 인정받아 국토부 차관직에 올랐다.


김 의원은 “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ㆍ이명박의 다섯 대통령을 모시면서 철도ㆍ항만ㆍ도로ㆍ국토관리 등 5가지 국토해양부의 거의 모든 일을 섭렵한 전문가가 됐다”고 말했다.


덕분에 19대국회에서도 김 의원은 ‘국토해양분야의 중진의원’으로 불린다.


“차관재직 1년 3개월 동안 제 사무실 문을 항상 못 닫게 했습니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누구나 드나들며 소통하는 공간으로 인식시키고 싶었습니다.”


김 의원의 동네아저씨 근성은 여기서 어김없이 발휘됐다.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힘은 가정이니 혼자 살지 말자!’며 소개팅ㆍ중매에 직접 나서, 직원들의 가정 만들기에 앞장선 것이다. 동네 반장님처럼 잡일도 도맡아 하고 직원들의 사적인 고민상담도 들어줬다.


◇ 호치민ㆍ케말파샤처럼 ‘아저씨’로 불리고 싶다
“제 아들놈이 ‘31년 만에 직업을 새로 구한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묻더군요. 또 ‘사람들이 다 욕하는 그 동네는 뭐하러 갑니까’ 걱정도 하고요. 31년 공무원 생활동안 20년간 국회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래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업무 관계와 기능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요. 우스갯소리지만 ‘내가 국회의원 되면 저렇게는 안 한다’고 속으로 큰소리 칠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19대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열심히 상임위 관련 공부도 하고 지역현안 파악에도 노력했습니다. 특히 행정부는 소관분야 이외엔 법안을 만들 수 없지만 입법부에서는 모든 분야의 법을 고칠 수 있고, 만들 수 있다는 게 좋았지요.”


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행정 관료로서 밖에서 국회를 바라보던 모습과 국회의원으로서 직접 접하는 국회는 다른 점이 너무도 많았다.


“일사분란하게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행정부와는 달리, 모든 방면에서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추진해야 할 입법부에서는 천천히 꼼꼼하게, 합리적으로 조율해나가야 하는 부분이 많더군요. 쉽지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희국 의원은 19대국회가 시작하고 첫 임무로 도시개발에 관한 법을 발의했다.


“이 법을 통과시키고 우리 지역구인 대구 중구, 남구를 도시재생시범지구로 지정해 좀 더 나은,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게 제 바람입니다. 최근에는 지역구 관련 예산확보로 지역구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기도 합니다.”


김 의원의 소속 상임위원회는 국토해양위원회가 아닌 보건복지위원회다. 지금까지 그의 이력으로 미루어볼 때, 다소 의외로 느껴지는 선택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이 왜 국토위를 놔두고 복지위를 선택했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전 복지와 건설을 다르게 보지 않습니다. 가령 복지와 SOC(사회간접자본)는 같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건설 SOC는 복지입니다.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도로와 공원, 야구장, 축구장 등 모든 것이 결국에는 국민 복지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해양분야 전문가지만 상임위를 보건복지위원회를 선택해 복지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다는 포부도 밝힌 것이다.


정조(正祖) 대왕은 “나라는 백성에 의지하고 백성은 나라에 의지하니, 백성이 있은 뒤에야 나라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희국 의원은 “정조 대왕의 이 말씀을 늘 소중히 기억하겠다”며 “마음이 한결 같이 진실되면, 쇠와 돌도 뚫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항상 더 낮은 곳, 더 가까운 곳에서 한결 같은 마음으로 국민들과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 김 의원은 앞으로도 계속 ‘동네아저씨’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호치민은 위대한 주석이 아닌 동네아저씨인 호 아저씨, 혹은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터키의 케말파샤도 마찬가지고요. 어려운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소통하고 이해했죠. 제가 국토부에 몸담고 있을 때도 지금 국회의원이 돼서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필요로 하는 동네 머슴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러려면 어려운 의원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는 의원이 되고자 합니다. 제 별명인 ‘동네 아저씨’처럼 말입니다.”


◇ 김희국 의원은…
1958년 경북 의성 출생. 경북고ㆍ경북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 12월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육군 중위로 군 복무를 마친 김 의원은 해운항만청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31년간 국토해양부 공무원으로 몸담으면서 △고속철도과 과장 △도로정책과 과장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국토해양부 4대강 살리기 기획단 단장ㆍ부본부장 △국토해양부 제2차관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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